욕망의 시각화
욕망의 시각화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12.27 18:19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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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

기억이 희미해졌지만 언젠가 TV에서 손에 묻은 세균들을 시각화해서 보여준 적이 있었다. 양치 후 이빨에 남은 충치 균을 색깔로 보여준 적도 있다. 원래 보이지 않는 것을 그런 식으로 보여주는 것은 대단히 효과적이다. 보는 즉시로 경각심이 생겨난다.


그렇게 직접 눈에 보이게 해주는 것이 가장 확실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경우라면 머릿속에 그려보는 것만 해도 상당한 효과가 있다. 예컨대 마음속에 지도그리기 같은 것도 그런 경우다. (심지어 나는 인간의 관심사 내지 성향 내지 종류를 드러내기 위해 자신이 평소에 혹은 평생토록 다녔던 장소들을 마음속 지도에 표시해보라고, 그 지도에 찍힌 자신의 발자국을 그려보라고 권한 적도 있었다. 일종의 철학적 방법론이다.)

문득 인간의 욕망을 그런 식으로 시각화해서 본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컨대 가장 대표적인 인간의 욕망이라는 재물욕, 권력욕, 명예욕, 그런 것을 색깔로 칠해서 드러내보는 것이다. 재물욕은 빨강, 권력욕은 파랑, 명예욕은 노랑, 그런 식이다.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반짝반짝 빛나게 한다면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그러면 아마도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70억 인간들의 가슴속이 모조리 빨강 파랑 노랑 아니 총천연색으로 반짝반짝 빛날 것이다. 그걸 만일 하늘에서 내려다본다면 마치 위성이 촬영한 지구의 야경처럼 그 빛들이 지구 전체를 뒤덮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 강도에 따라 빛의 밝기도 달라진다. 서울 여의도나 강남 같은 곳은 특별히 더 밝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만일 ‘진실’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그 욕망들을 예쁜 색깔이나 빛으로 표시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게 그렇게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 대부분은 사실 자기애와 결부돼 있고, 그 욕망의 실현과정에서 타인의 욕망과 충돌한다. 그래서 그 과정은 대부분 투쟁이 된다. 그래서 그것은 피나 멍이나 상처를 동반한다. 아니 그 이전에 그 욕망들은 거의 대부분 시커먼 사적 욕심과 결부돼 있다. 그러니 그런 실상에 어울리는 색깔을 칠하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인간들의 가슴속에 있는 욕심들을 시커먼 색으로 칠해본다. 그러면 아마도 당당하게 가슴을 열고 거리를 나다닐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아니 애당초 거리낌 없이 누군가를 마주할 수 있는 사람도 거의 없을 것이다. 모두가 모두에게 서로서로 정체를 숨긴 채 상대방을 노린다. 그런 게 인간이고 그런 게 세상이다. 실제로는 그런 시커먼 욕심이, 먹물보다 더 시커먼 욕심이 눈에 안 보이니까, 뭐나 되는 양 그럴듯한 말과 행동으로 위선을 떨며 행세를 하는 것이다.

더욱이 그 욕망으로 인해 사람이 사람에게 안겨준 멍과 상처들을 생각해보라 그런 것은 시푸르둥둥한 색깔로 칠하는 것이 맞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70억의 인간들은 또 대부분 스머프나 아바타의 나비족처럼 되고 말 것이다. 그것이 우리네 인간의 너무나 여실한 모습임을 그 누구도 쉽게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좀 더 적나라하게 말해보자면 우리가 선택해야 할 색깔은 검정도 파랑도 아닌, 아마도 시뻘건 핏빛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사람들은 사람들에게 너무나 쉽게 공격을 한다. 말로 태도로 행동으로 그리고 실제 무기로 공격을 한다. 너무나 쉽게 사람들은 사람들을 찔러댄다. 선량한 사람들은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린다. 보이지 않는 그 피를 시각화해서 그려보자. 그러면 아마 선혈이 낭자한 사람들의 가슴이 한눈에 들어올 것이다. 온 지구상에 핏빛 강물이 흐를 것이다. 그건 어쩌면 홍수 수준일지도 모르겠고 어쩌면 저 바다에 가득 차 지구상의 모든 해변에서 파도로 울부짖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것은 아직 칠해지지 않았고 따라서 우리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그냥 그렇게 살고 있다. 욕망 때문에 밟고 밟히고, 때리고 맞고, 찌르고 찔리고,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고, 그렇게 시커멓게, 그렇게 시퍼렇게, 그렇게 시뻘겋게 살고 있다. 저 하늘 위의 전지전능한 신은 어쩌면 그 모든 보이지 않는 색깔들을 보고 계신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가슴이 아프실 것이다. 화가 나실 지도 모르겠다. 그건 인간과 세상에 대한 당초의 구상이나 기대와는 크게 다를 것이다. 이제 그런 인간의 욕망과 욕심들이 다른 인간들뿐만 아니라 온 지구를, 자연을, 우주를 건드리기 시작했다. 조만간 참다못한 절대자가 불벼락을 내릴지도 모르겠다.

이제 누군가가 인간들의 가슴에 색깔을 칠해 그 위험한 욕망을 시각적으로 좀 드러내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예술이어도 문학이어도 철학이어도 그리고 TV여도 좋다. 경각심을 일깨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바야흐로 그런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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