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랑극단 동춘서커스
유랑극단 동춘서커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01.05 18:40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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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

한국 최초의 서커스단인 동춘은 영화관도 텔레비전도 없던 1925년 목포에서 창설 소속 단원 250명이 넘을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당시 허장강, 서영춘, 배삼룡, 백금녀, 정훈희 씨까지 수많은 스타가 동춘 서커스 무대에 섰다. 침팬지, 코끼리, 낙타, 호랑이, 기린, 말, 사자 등 10여종 30여마리의 동물을 보유하였으며 어린이 노인들에게 최대의 볼거리였다.


70년대 이후 텔레비전이 본격적으로 보급되면서 동춘서커스는 쇠퇴의 길을 걸었고 지방 축제장 등 순회공연으로 재기를 노렸지만 경영난에 시달렸다.

“사라져가는 것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의 얼굴이 아니라 뒷모습만을 보았기 때문이리라 마멸돼가는 옛 영화에의 환각을 버리지 못한채 매달려 있는 비천한 목숨들의 분노를 뻗어 오른 기둥과 펄럭이는 천막에서 볼 수 있었던 아내는 오히려 현명한 여자였다.”

한수산의 장편소설 부초(浮草)에 나오는 곡예단 총무가 아내의 말을 떠올리는 대목이다. 한수산은 서커스단의 애환을 쓰기위해 2년간 동침 취재했고 부초 소설은 76년에 발표 그 이듬해 작가상을 수상 베스트셀러 작품이다.

300평 규모의 낡은 천막에 400명 안팎의 관객이 몰려 공중곡예, 그네 타는 묘기 등을 보면 한 사람이 천정 가운데 매달려 그네에 발을 걸고 거꾸로 매달려서 기다리고 있고 오른쪽 구석에서 곡예사 한명이 그네를 타고 가 몸을 날려 그의 손을 잡는다. 얼굴과 얼굴이 아래 위로 마주본 그 자세로 그네를 한번 구르고 나서 다시 몸을 날렸다가 오는 그네를 잡고 제자리로 돌아가는 묘기이다. 박수가 쏟아진다. 어린이 관객도 많았지만 옛날의 향수를 못잊어 찾아온 중장년층과 노인들의 모습도 보였다. 빈터에 천막을 치고 피에로 의상을 한 난장이와 짙은 화장에 무대의상을 입은 곡예사들이 트럼펫과 북소리에 맞춰 거리를 누비며 선전을 하면 읍내가 술렁거렸다. 쇼와 마술, 자전거 묘기, 전통곡예, 그네묘기, 외줄타기, 공중곡예 등이다. 화신(花信)을 따라 봄이면 낙동강 줄기가 있는 영을 넘어 북쪽으로 올라왔다가 서릿발이 내리는 늦가을이면 지리산 남쪽으로 내려가는 철새가 된다.

관객들의 박수갈채 속에 고달픔을 잊고 찬바람이 파고드는 겨울철 텅빈 천막 안에서는 뼈마디가 시려오는 듯한 처연한 기분이 든다는 유랑인생 손님이 따로 없다 뿐이지 분 바르고 옷갈아 입고 재주피며 살기란 마찬가지란 생각이야 어디로 가게될지 아직은 정처가 없다만 부초의 주인공 곡예사가 이 세상을 향해 던지는 마지 막 절규가 귀에 쟁쟁하게 들리는 것 같다. 곡예사들이 약장수며 밤무대로 진출 천막 밖으로 생활의 터전을 찾아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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