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노요법(憂勝怒療法)
우승노요법(憂勝怒療法)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01.11 18:59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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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옛날 중국 청나라에 우울증에 걸린 순안(巡按)이라는 대인이 살았는데 그는 늘 마음이 울적하여 미간(眉間)을 찌푸리고 다녔다. 그러다가 끝내 폐가 손상되어 기침이 잦아지고 기역(氣逆:기운이 위로 치미는 병리 현상)증세까지 보였다. 명의(名醫)가 진찰을 해 보니 병의 원인은 근심과 우울로 생긴 병이었다. 그러나 의원은 진맥을 마치고 나서도 아무 말 없이 반나절을 생각만 하더니 한참 후에야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떼었다. “대인의 병은 월경 불순입니다. 월경을 규칙적으로 하게 돕는 약을 처방해 드릴 테니 일주일동안 꾸준히 복용하시면 차도가 있을 것입니다.” 약을 지어 준 의원은 총총 그 자리를 떠났다. 명의의 말에 대인은 너무도 황당하여 배꼽을 잡고 크게 웃었다. “어찌 남정네가 월경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거기다 월경분순이라니. 그놈의 의원이란 놈, 정말로 돌팔이 이구나!”그렇게 한참을 박장대소를 하며 크게 웃다 보니 어느새 대인의 우울증이 말끔히 사라지게 되었다.


또한 사례는 금원(金元)시대의 유명한 의원인 주단계(朱丹溪)가 한 수재의 병을 살핀 적이 있었다. 이 수재는 젊은 나이였지만 아내가 갓 세상을 떠난 탓에 크게 상심하고 종일 울어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였다. 아무리 용한 의원을 청해도, 그 어떤 명약을 써도 차도가 없었다. 주단계는 그의 맥을 꼼꼼히 살피고 반나절을 깊이 생각한 뒤 신중하게 말했다. “희맥(喜脈)이 짚어지는 것을 보니 임신인 듯하오. 배 속의 아기는 수개월은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임신을 축하한다고 덧붙이고는 그곳을 떠났다. 명의의 말을 들은 수재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무슨 명의라는 사람이 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구분하지 못한단 말인가? 남정네가 어찌 임신을 한단 말인가? 멍청한 돌팔이의원이네.”

돌팔이 의원만 생각하면 할수록 수재는 웃음이 절로 나오곤 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웃음을 잃지 않았던 그는 마침내 마음의 기쁨을 회복할 수 있었고 식욕이 돋아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황제내경(黃帝內經)’에서는 우울하면 그 감정을 발산해야 한다. 라고 했다. 한바탕 대성통곡을 하거나 눈물을 흘리면 각종 신경 전달 물질이 눈물을 통해 체외로 배출되므로 긴장을 풀어 주고 슬픔을 잊게 한다고 한다.

미국의 세인트 폴 정신 병리학 연구소의 윌리엄 폴리에는 흥미로운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200명의 남녀에게 실험을 한 결과 실컷 울고 나서 울기 전보다 훨씬 홀가분하고 건강이 나아졌음을 느낀 사람은 여성이 85%, 남성이 73%에 달했다고 한다. 이렇게 눈물을 쏟아 내면 고통과 우울이라는 소극적인 감정에서 벗어나 빠른 시간 안에 마음을 회복할 수 있다고 한다.

반면 분노(忿怒)가 과하여 간이 상하면 어떻게 치료할까? 이는 근심으로 치료할 수 있는데 이를 ‘우승노(憂勝怒:근심요법) 치료법’이라고 한다.

옛날에 불같이 화(禍)를 내는 성격의 귀인이 살았다. 그런데 얼마나 성미가 못됐는지 화기가 눈에까지 영향을 미쳐 결국 백내장에 걸리고 말았다. 그를 살핀 의원은 그것이 분노가 폭발해서 생긴 병이라고 여기고는 ‘우승노치료법’을 쓰기 위해 거짓말로 그에게 겁을 주었다. “보아하니 어르신은 지금 백내장보다 더 시급한 질병을 앓고 있습니다. 백내장은 머지않아 호전될 것이지만 어르신의 오른쪽 다리는 몇 달 내에 썩어 들어가고 말 것입니다.”

의원의 말에 걱정이 되기 시작한 귀인은 종일 오른쪽 다리만 쳐다보면서 근심하며 살았다. 하루 종일 근심만 하다 보니 불같이 화를 내뿜던 성격은 사라지고 고요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화를 내지 않은 채 몇 개월을 보내자 과연 그의 백내장 증세는 서서히 완화되기 시작했다. 귀인의 백내장이 치료될 수 있었던 것은 불같은 감정이 제어되면서 마음의 평안을 찾았기 때문이다. 사실 귀인의 오른쪽 다리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의원이 귀인의 노기(怒氣)를 가라앉히려고 그의 관심사를 다른 곳으로 돌렸던 것이다.

새해에는 그간 얽혀 있었던 우울한 것들은 한바탕 큰 웃음으로… 쌓였던 분노들은 우승노요법으로 말끔히 털어버리고 원숭이의 해 병신(丙申)년 한해를 모두들 건강하게 맞이하고 보냈으면 한다… 근하신년(謹賀新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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