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권
복권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01.12 18:57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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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미국에서 일조칠백육십팔억 원짜리 로또가 당첨 되었다는 전언을 들었다. 일조라니!!! 도대체 얼마나 큰 돈이지? 아니 이조보다는 작은 것이니까 얼마나 작은 돈이지? 뭐야, 진짜 감이 안 잡히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돈의 크기가 감지가 안 되기는 하다. 그러면 이번에는 부피로 짐작을 시도해 보자. 대략 내가 가게를 열고 있는 상가 건물을 오만원 원짜리 지폐로 꽉꽉 채울 수 있는 돈이란다. 우리 상가가 열 개의 점포가 들어있으니......... . 그래도 짐작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그 돈을 탄 사람은 기절해서 죽지 않았을까? 그러면 그 돈은 행복이 아니라 불행이네. 어쩌라구?? 기절해서 죽더라도 그 돈 한번이라도 받아보고 싶다. 별별 생각이 명멸한다. “그 돈이면 웬만한 기업체 하나는 살 수 있을 텐데.....” 처음 인터넷뉴스로 알아내 내게 알려준 아들도 가늠이 되지 않기는 마찬가진 듯. “그 돈이면 뭐가 아쉬워 골치아픈 기업체를 혀? 걍 먹고 놀아도 평생 쓰도 못 쓸 판인데!” 옆에서 비스듬히 누워 귀를 파고 있던 남편이 이죽거렸다. 나는 둘 다 이유없이 얄미워 눈을 빡세게 흘겼다.

결혼 초기였다. 남편이 신문을 깔고 앉아 뭔가를 열심히 맞춰보고 있었다. 내가 부엌에서 힐금 보며 뭐냐고 물었다. 대답은 못하고 곤혹스런 웃음을 지으며 돌아앉아 잠시 더 골몰하더니 일어서 신문을 접고 안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나는 남편의 미심쩍은 표정에 뭔가 있다 싶어 따라 들어갔다. 뭐냐니깐? 남편은 신문을 뒤로 숨기며 아이 뭘 자꾸 그래? 하며 외려 큰소리를 쳤다. 내가 더 덤비자 복권이야, 복권. 남편이 힘없이 말했다. 그리고 아주 쑥스러워했다. 나는 그만 웃고 말았지만 속으론 씁쓸했다. 그 후론 남편조차 복권을 사는 일은 없었다.

나는 아직 한번도 복권을 사본 적이 없다. 그런 큰 복이 나에게 굴러올 일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한번도 산적은 없지만 내게 복권이 당첨된다면 하고 상상해본 적은 많았다. 초등학교 고학년쯤에 나는 상상을 하나의 놀이로 즐기곤 했다. 또래의 걸음으로 거의 반시간이 걸리는 등하교 길을 걷는 동안 상상을 했다. 그 놀이는 꽤 심각하고 진지했다. 어느새 집에 도착하면 정신이 상상속을 헤매느라 현실을 되찾기엔 잠시의 시간이 필요했을 정도였다. 지금 티브이 드라마를 보면서 그때와 비슷한 몰입을 하곤 한다. 상상속이지만 굉장히 구체적이고 집요했다는 얘기다. 누구누구 같은 사람과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남편의 출근 배웅을 하고 아이를 돌보고...... 지금도 기억에 뚜렷한 상상의 드라마다.

기억하기로는 내가 십대를 넘기는 때에 복권이 세간에 화제가 되기 시작했을 것이다. 흑백티브이로 복권추첨 중계를 보곤 했으니까. 그때 나는 공장에서 일했고 돈을 벌어 부모님께 거의 모두를 드렸다. 거의 모두 라고는 했지만 자취를 했으니 생활비는 빼고 드려야 했다. 방세가 육천 원 정도 했으니 참 옛날 이야기다. 방세를 빼고, 쌀값도 빼고, 월부 책값도 빼고, 그리고 잡비도 얼마쯤 빼고 남은 돈을 갖다 드렸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월급을 받기 며칠 전 한 사흘간이었다. 그 사흘 동안에 월급이 나올 것이라는 상상을 하며 씀씀이를 계산하는 것이었다. 그 상상이 어찌나 재미있었던지. 얼마나 진지했던지. 정말이지 그 빤한 월급으로 빤한 생활을 하는데도 왜그렇게 몰입했을까? 그날의 그 상상하고 계산하고 예산하던 일들이 너무도 생생하다. 오히려 현실에서 내 몸소 체험한 일들보다 그런 저런 ‘상상’들이 환갑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이렇게 오래도록 생생하다니, 놀랍다.

복권 또한 내게는 상상으로만 기억될 뿐이다. 복권을 천만원 타면, 하고 상상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때 권력형 비리자들이 억 단위를 넘는 돈을 받아먹는다는 뉴스가 드문드문 들리던 때이니까 천만 원이면 어마어마한 돈이었다. 그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상상하는 일은 얼마나 신기하고 근사했겠는가? 복권에 당첨되어 천만 원을 타면 먼저 가난한 부모님께 갖다 드려서 그렇게나 소원하던 긴 고랑의 논을 사게 해드리자. 그 다음엔 언니는 얼마, 동생들은 얼마, 또 동네의 불쌍한 사람들 누구누구에게 얼마 얼마...... 또 돈이 없어 진학을 못한 친구들을 찾아가 진학을 돕고......... 정말이지 끝없는 상상의 나래를 폈다. 그러고 보면 나는 돈이 생기면 남에게 줄 생각을 먼저 했던 것 같다. 다행이다. 움켜질 상상만 했다면 지금의 나는 못 됐을 것이다. 아무튼,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밤늦도록 상상놀이를 즐겼다.

그런 상상이 차쯤 잦아드는 때는 언제였을까. 아마도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고 성과를 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상상속의 성취는 그 꼬리를 서서히 감추었을 것이다. 예컨대 실제 연애를 시작하며 상상속의 근사한 남편은 사라지고, 대학을 가야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이 서면서 상상속의 성공이 아닌 대학 입시를 위한 공부에 매진하면서 상상속의 그것들은 서서히 사라졌을 것이다. 안녕, 나의 아름다웠던 상상놀이여!! 조금 쓸쓸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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