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비해 윤이상 선생은 1967년 동베를린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는다. 차가운 감방 생활을 하던 1969년, 카라얀, 클렘페러, 슈톡하우젠, 스트라빈스키 등 세계적 음악가들의 탄원으로 석방되어 독일로 갔다. 이국에서 간난신고 해가며 음악 세계의 지평을 넓혔지만, 조국은 그에게 씻지 못할 형벌을 주고 말았다. 결국, 이 사건에 대해 2006년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진실위)’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동백림 사건은 과장된 것이므로 정부는 관련자에게 포괄적으로 사과해야 해야 함”이라고 권고하였다.
통영시의 역점사업인 통영국제음악제는 현대음악의 거장 윤이상을 기리기 위해 시작되었다. 2000년과 2001년의 준비과정을 거쳐 2002년부터 본격 개최되어 현재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세계적 수준의 음악제로 위상을 정립해가고 있다.
올해로 9회째를 맞은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는 2006년 한국 콩쿠르 중에서 최초로 유네스코 산하기관인 국제음악콩쿠르세계연맹(WFIMC)에 가입해 그 권위를 인정받았고, 2011년 5월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한 ‘2010 공연ㆍ전통예술행사 평가사업’에서 전체 평점 91.8점으로 최우수 A등급을 받아 음악부문 1위를 차지했다. 또한 ‘2011 문예진흥기금 지원사업’에서도 음악부문 사업 중 최고 지원액을 기록했다.
위에서 밝혔지만 통영시의 윤이상 선생 추모 사업은 선생의 법적행위가 다 해결되고 난후인 2000년부터 시작되었다. 또한 문화관광부와 경상남도가 지원하는 사업이므로 통영을 떠나 범국가적인 행사로 지속되어 오고 있다. 만약 문제가 있었다면 애초부터 이 사업은 성립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성공리에 정착한 사업을 이제 와서 못하게 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
분명한 것은 통영시의 윤이상 기념사업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인구 14만의 작은 도시에 윤이상 기념사업이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위의 이유들만은 아니다. 통영의 대부분 학교의 교가를 윤이상 선생이 작곡하였기에 시민들과 선생과는 이미 어릴 적부터 정서적 공감대를 함께하고 있다. 이처럼 통영은 윤이상의 고향이라는 음악사적 배경과 한려해상국립공원 중심부에 펼쳐진 수려한 자연경관으로 음악도시의 정체성을 확립해가고 있다.
통영시민들은 월북한 통영의 딸 신숙자씨 모녀뿐만 아니라 납북되어 억울한 삶을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자랑스러운 통영의 아들 윤이상 선생의 명예가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 진정 신숙자 모녀를 위한다면 위대한 예술가 윤이상 선생을 흠집 내기보다 다각도에서 구원의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우리는 냉정을 찾아야 하고 그 본연의 일에 매진해야 한다. 한국예술1번지 도시, 통영시민은 이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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