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운동은 신토불이다
환경운동은 신토불이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01.19 18:37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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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주/환경부 환경교육홍보단·경남환경연구원장

생물의 삶에 직접ㆍ간접으로 영향을 주는 주위의 자연적 조건이나 사회적 상황으로서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환경’이라 한다면 결국은 내 자신이 환경이 된다. 신토불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근본 뜻은 자연과 우리 생명체는 둘이 아닌 하나라는 뜻일 것이다. 이를 바꾸어 말하면 어느 한쪽이 오염되고 망가지면 또 다른 한쪽이 망가질 수밖에 없다는 자연의 심오한 이치가 아니겠는가. 결국은 환경오염은 내 자신이 오염된다는 결론이다. 자연과 인간은 동체대비同體對比 사상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환경을 지키고 보존해야 되는 근본 뜻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자연 파괴는 곧 우리생명을 파괴하고 건강을 빼앗아 갈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구환경 재앙으로 이어질 수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나만 잘 살고 나만은 무공해 식품을 먹겠다고 계약 재배해 먹고 내 집 앞의 쓰레기를 멀리 갔다 버리지만 환경오염과 그 피해란 것이 그렇게 국지적으로 만 나타난다고 생각할 수가 있겠는가. 파괴된 환경을 되살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뿐 아니라 회복된다고 해도 많은 시간과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이다. 지금의 「편의성 개발」이 이득을 주는 것 같지만 먼 훗날 엄청난 손해를 우리에게 주고 있다는 사실은 진주의 비봉산 정상부근에 남북으로 차단하여 설치한 콘크리트 도로로 인한 생태계 폐해를 보면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이처럼 환경보전을 외치고 환경의식을 만들어 가는 것도 우리의 생명이 귀한 것처럼 자연환경이 건강할 때 우리의 생명도 건강하게 지켜질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옛날처럼 나에 앞서 남을 배려하고 이해하려는 마음과 정감 있는 인간성이 없는 것 같다. 비봉산 생태공원 조성도 다수의 시민을 위한 생태적 시민공원은 뒷전이고 나만이 존재하는 실정이다.“다 함께” 라는 개념이 지금 우리에게는 존재하지 않고 있다. 모두가 왕자이고 공주이고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라는 개념은 점점 멀어만 가는 것 같다.

이제 우리는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공존의 개념 우리들의 공존지수(N Q-network quotient)를 높이고 내가 아닌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미래의 지역사회 주인공들인 청소년들에게 기성세대인 우리들은 무엇을 물려 줄 것인가? 청소년들에게 경쟁보다는“공존과 화목”을 통하여 나 보다는 우리 모두가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생태적인 환경사회를 물려주어야 할 책무가 있다.

우리나라 정당들도 서로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생각이고 서로가 사생결판을 낼 것처럼 싸우고 있다. 대통령 따로, 국회의원 따로, 국민 따로, 민주주의 정치는 토론의 정치이며 화합의 정치가 진정한 민주정치가 아니던가?

자연이 오염되지 않았던 수십 년 전만 해도 우리 국민은 정말 법 없이도 살 수 있었던 정이 넘치는 국민이었다. 돌아가시는 아버님의 마지막 말씀 속에 “동구 밖에 논 두마지기만은 꼭 지켜라”는 유언을 남길 정도로 욕심 없고 순박한 백의민족 이었다. 봄이 되어 씨앗을 뿌려도 사람과 날 짐승, 땅 속 미물 몫으로 세 개를 뿌렸다. 가을이 되어 감을 딸 때에도 날 짐승을 위해 몇 개를 남겨 두는 소박한 민족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매일같이 살인사건이 언론방송에 오르내리고 있다.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부모가 자식이 귀찮다고 토막을 내고, 냉동을 시키고, 내 기분이 나쁘다고 불특정에게 불을 지르는 보도로 우리의 인성이 파괴되고 있다. 이러한 인성은 자연의 오염과 파괴가 늘어날수록 정비례하여 성급해지고 인내성이 적어지며 우리의 성품이 공격적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녹지비율이 높은 학교환경에서 학생들의 인성이 좋아지고 런던 템즈강 다리의 칼라를 녹색톤으로 바꾼 후 자살자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는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자연환경이 우리인간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심오한가를 알 수 있다. 세계의 문화발생지 모두가 물과 초지, 녹색의 숲이 많은 곳에서 생겨났고 숲과 나무가 점점 없어져가면서 그 문화는 소멸되고 망해갔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스터 섬의 멸망에서 보아 왔다. 자연과 더불어 상호 공생 공존할 수밖에 없는 자연의 심오한 섭리를 그리고 사람인(人)자 가 가지고 있는 깊은 뜻을 저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폐수발생량이 많을수록 범죄가 많아진다는 美 FBI의 보고서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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