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속의 스승들
내 마음 속의 스승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01.26 18:29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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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우리 집 안에는 네 장의 사진이 있다. 우리 집이라면 당연히 우리 가족들이 있어야 되는데 이 사람들은 우리 가족이 아니다. 현관에는 진주에 사시는 사랑스러운 우리 김장하 선생님, 한 장은 돌아가신 김근태 의원님, 또 한 장은 김대중 대통령님, 또 다른 사진은 일본인 이케다 다이사쿠 회장님의 것이다. 그리고 내 수첩에는 신문에서 오려낸 노무현 대통령님이 손녀를 뒤에 태운 자전거를 타는 사진이 꽂혀 있다. 정치가가 세 분이나 되니 내가 권력지향적 인간인가? 단연코 아니다. 다만 정치가들이 잘 해야 국민이라는 사람들이 살기 좋아진다 생각은 분명하다.


나를 예뻐해 주시는 동네 언니네 집 안에는 박근혜의 사진이 무려 다섯장이나 걸려있다. 이 언니가 우리 집에 올라치면 “너는 어째 꼭 이런 사람들만 좋아하니?” 나는 당연한 대답을 한다. “언니는 왜 꼭 그런 여자만 좋아해?” 그리고 둘이서 박장대소를 한다. 갖은 욕을 하면서. 그래도 얘기가 끝날 무렵이면 언니가 한마디 해준다. “그래, 너 잘났어. 근데 너 조심해라, 사람이 너무 똑똑해도 못 살아.” 내가 눈을 빤히 뜨고 “내가 못살아?” 하면 언니는 손사래를 치며 “아 아니, 그게 아니라니까!” 하면서 말줄을 찾지 못하고 버벅거리다가 또 한바탕 배꼽을 잡고 웃는다.

생각해보면 참 기가 찰 노릇이지만 그 언니와 나는 오늘도 웃고 떠들었다. 그 언니를 보내고 나는 사진 속의 사람들 중에서 김대중 대통령님을 지그시 바라봤다. 참 드라마틱한 인생을 사셨네예, 라고 말씀드리면서. 그 분처럼 드라마틱한 청혼을 받아본 사람도 없을 것이다. 감옥에 계시는 중에 이휘호 여인께서 청혼을 했다고 들었다. 얼마나 황홀했을까, 얼마나 고마웠을까? 아마도 그 황홀함과 감사함으로 일생을 잘 살지 않았을까? 기어이 대통령이라는 커다란 선물까지 그 여인에게 안겨주었지 않은가?

하긴 그 세월이 얼마나 지난했을까? 아무리 부부 둘이서 서로 사랑으로 의지하며 함께 해냈다고 해도 그 고난의 날들을 생각하면 절로 고개를 숙이게 된다. 긴 가택연금을 두 분이서 이겨내셨다. 마당에 놀러오는 새를 벗삼았다고 들었다. 존경하는 문우 중에는 외국엘 가끔 왔다갔다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 얘길 들으면 외국에서는 한국은 잘 몰라도 김대중이라는 사람은 잘 안다고 한다. ‘민주화’라는 위대한 꽃을 피우겠다는 사명으로 평생을 일관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위대함은 스스로의 생명력이 있어서 그렇게 멀리 널리 알려지나 보다.

내일 당장 이휘호 여사님의 사진도 구해서 걸어 마음의 스승으로 삼아야겠다. 이휘호 여사님이 없었다면 김대중 대통령님도 없었을 것이다. 세상에~~ 대담하시기도 하지. 어떻게 감옥에 있는 남자에게 청혼을 할 수 있었을까? 우리네들은 싹수가 노랗다고 천리만리 도망을 쳤을 것이다. 그러니까 여사님은 김대중이라는 남자가 대통령감이라는 걸 이미 알아봤다는 건데, 이 또한 놀랍다. 우리나라가 복운이 없는 게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이라는 위대함이 탄생된 나라니까. 게다가 이휘호 여사님 같은 대단한 여성을 갖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결의하게 되었다. 두 분 님들을 생각해서라도 절대로 인생을 헛되이 살지 않겠다고. 사는 게 힘겨울 때마다 님들을 생각하겠다고. 님들의 일생 중에서도 가장 고통스러웠을 때를 생각하겠다고. 그래서 내 앞에 놓여진 고통도 오히려 행복을 가져다 줄 전주곡쯤으로 여겨서 기꺼이 웃으며 이겨내겠다고 가슴으로 깊이 결의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사실 너무도 힘들다. 동네물가는 안 오른다고 떠들면서 자고 나면 올라있다. 언론은 물가가 제자리 걸음이거나 뒷걸음 쳐서 걱정이라고 설레발을 친다. 물론 집값이 내리긴 내렸다. 그러나 집값하고 동네물가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 집값은 안 올라도 애초 살 돈이 없다. 동네물가는 다르다. 오천원을 들고 가서 라면 열 개를 사려고 하면 돈이 모자란다. 집을 나서며 마트에 가면 돈을 더 쓰게 될까봐 딱 오천 원만 꺼내들고 갔던 참이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하루에 한 끼는 라면을 먹게 된다. 내 복에 열 개씩이나 대량구매(?)를 할 요량이었던 것이다. 다음날엔 내가 상비하고 먹는 쌍화차를 살라치면 250원이나 올라있다. 안 올린다고 동결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도 실제 물가는 이렇게 올리고 있다. 말이나 말든지.

김대중 대통령님을 이야기했으니 노무현 대통령님, 김근태 의원님은 얘기하지 않아도 왜 내 방에 그 분들 사진이 걸려있는지 대략 짐작했을 것이다. 그런데 맨 나중에 호명드린 이케다 다이사쿠님은 무슨 이유로 우리집안에 사진이 걸려 있는지 궁금한 사람들을 위해 몇말씀 드리자. 이케다 선생님은 올해 연세가 88세 되신 종교지도자이시다. 벌써 20년 전에 그분은 이렇게 결의해주셨다. “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해 글을 읽고 쓰겠습니다. 늙어서 손을 못 쓰면 발로, 발을 못쓰면 입에다 펜을 물고, 그도 안 된다면 온 몸으로라도 읽고 쓰겠다.”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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