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맛, 도다리 쑥국
봄맛, 도다리 쑥국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11.21 17: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이상은/IT교육 컨설턴트
가을이 깊어가고 겨울이 다가오니 봄이 그리워진다. 따듯한 봄볕도 그립고 꽃들도 보고 싶다. 좁은 방에 들어 앉아 지난 봄에 찍은 풍경 사진들을 들추어내 보지만 흥이 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텁텁해지고 양념이 많아진 음식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인생도 나이가 들면 사연이 많아지고 집착이 늘어 걸쭉해지게 마련이다. 이 구석 저 구석이 부끄럽고 개운치가 않다. 음식도 한해가 저물어 가는 계절에는 국물이 진해지고 맛도 무거워져 풍성하긴 하나 어디가 막힌 것처럼 답답하다. 여름 나뭇잎은 푸르고 무거워 가지에서 떨어져도 멀리 날아가지 않지만 모든 걸 다 내어주고 가벼워진 가을 나뭇잎은 한 줄기 바람에도 유유히 걸음을 옮긴다. 한갓 나뭇잎도 때가 되면 다 내어주고 가벼워지는데 나는 나이가 들어가도 가벼워지기는커녕 점점 때가 묻어 무거워지기만 한다. 이렇게 생각이 무겁고 답답할 때마다 학창 시절이 그립다. 하지만 돌아 갈수야 없지 않은가. 인생도 계절처럼 그 시절이 또 돌아오면 얼마나 좋겠는가. 참고 기다리면 어김없이 꽃피고 새 우는 좋은 날이 오면 얼마나 행복할까.

오늘 아침은 바람이 유난히 차다. 산이 깊은 동네에는 얼음 소식이 들린다. 춥다. 봄이 그립다. 경남의 바닷가 동네는 봄이면 어디를 가나 벚꽃이 아름답다. 진해, 마산을 거쳐 하동에 이르기까지 어디를 가나 벚꽃 그늘 아래를 걸을 수 있다. 오늘 아침 아내가 얼큰한 김치찌개를 끊였다. 고맙긴 하지만 봄 음식이 생각난다. 벚꽃이 쏟아져 내리는 바닷가에서 먹던 도다리 쑥국 생각이 간절하다.

옷도 나이를 가리지만 음식도 그런듯하다. 아이스크림은 가슴이 뜨거운 젊은이들이 좋아한다. 그저 달콤하고 시원한 것이 가볍고 경쾌한 젊은이를 닮지 않았는가. 도다리 쑥국은 지나간 봄이 그리운 맛이다. 나는 봄에 도다리 쑥국을 먹을 때도 봄이 그립다. 늘 봄이 그리운 것은 봄이 이미 떠나 버렸거나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도다리는 봄에 맛이 제일 좋다. 날이 더워지면 비린내가 나기 시작한다. 봄이면 들로 나가 양지바른 곳에서 깨끗한 쑥 줌 뜯고 시장에 들러 도다리 몇 마리 싸서 된장 풀고  국을 끊인다. 따듯하고 쑥 내음이 오래도록 입안에 머문다. 도다리의 맑은 맛이 봄 햇빛을 닮았다. 그런가 하면 잘 익은 된장국물 맛이 푸근하고 정겹다. 봄에 먹는 도다리 쑥국의 맛은 그리움의 맛이다.

날이 추워진다. 도다리 쑥국 한 그릇이 생각난다. 먼데서 온 오래된 친구와 같이 먹었으면 좋겠다. 그저 이름 두자로만 서로를 불러주며 간간히 욕도 하며 몇 시간쯤 보내고 싶다. 내년 봄에는 벚꽃 좋은 동네로 친구들을 불러 도다리 쑥국 한 그릇 같이 먹고 싶다. 봄에도 봄이 그리운 것은 저마다 가슴에 품은 봄이 더 아름답기 때문이지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