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간 ‘부모 모시듯’ 동네 어르신 경로잔치
7년간 ‘부모 모시듯’ 동네 어르신 경로잔치
  • 함양/박철기자
  • 승인 2016.02.01 18:48
  • 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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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철 함양 보산부동산·보산횟집 대표

 
공경(恭敬)이라는 말이 퇴색해 가는 요즘 어르신 점심대접은 매우 뜻깊은 의미가 있다. 매년 잊지 않고 어르신을 챙기는 함양 보산부동산 이재철 대표(65)는“부모 같은 고향 동네 어르신들이 하루만이라도 따뜻하게 드시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힘이 난다”며 “대접받는 어르신들도 행복하지만, 결국은 내가 더 많은 내면의 행복과 위안을 얻는다”고 말했다. 지난 2009년 서울서 귀향해 함양읍 운림3리 청년회장을 맡아 어버이날 경로잔치를 주도하면서부터 시작됐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은 다음해부터는 사비를 털어 고향 어르신 모시기에 나섰다. 또한 지난해부터 ‘더불어 잘사는 세상’을 만들자는 ‘둥근촌함양포럼’(회장 오일창)을 주도, 발기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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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자비로 200여명에 식사대접
어르신의 즐거움 나의 힘 원동력 
‘내 부모같이’ 경로효친 몸소 실천

‘더불어 잘사는 함양’ 위해 봉사도  
차별없는 모임 소외 이웃돕기 지원   
 ‘둥근촌’ 오는 3월 창립총회 예정

이익보다 살기좋은 고향건설 헌신
같은 꿈을 가진 사람들과 뜻 모아
이웃사랑 전하는 사회로 만들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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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점심시간인 12시께 함양읍 운림리 보산횟집은 오고가는 어르신들로 북적였다. 이날은 보산부동산 이재철 대표(65)가 동네 어르신들에게 ‘한턱’ 내는 날이었다. 벌써 7년째다.

이날 경로잔치에 온 이들은 이 대표의 유년의 추억이 묻어 있는 백연리(상백·하백)와 운림1리·3리, 신기마을 등 5개마을 어르신들이다. 평소 시골 어르신들이 선뜻 주머니를 열기 만만찮은 회를 비롯한 정갈한 음식들을 마주한 어르신들은 연방 왁자하니 웃음꽃이 핀다. 물론 이 대표에 대한 치사들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자기 주머니 털어서 이리 많은 사람한테, (경로잔치 해주는 게) 요즘 쉽나? 그것도 매년 잊지 않고 동네 어르신 챙긴다는 게…. 요새 세상에 참 보기 드문 양반이지.”

식당을 나서는 한 할머니가 짐짓 배불러 죽겠다며 칭찬을 늘어놓는다. 봉사단체나 행정기관 등 누구로부터 지원을 받는 것도 아닌 경로잔치를, 그것도 200여명이나 되는 어르신들을 자비 들여가며 한결같이 섬겨온 이유가 뭘까?

“8년 전 귀향해 고향 발전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헌신하고 싶었다. 어르신들의 희생이 없으면 우리가 이렇게 살 수도 없었다. 부모 같은 고향 동네 어르신들이 하루만이라도 따뜻하게 드시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누군들 좋지 않겠나? 준비한 음식을 즐겁게 드시고 행복해하시는 걸 보면 힘든 준비 과정도 싹 잊혀진다. 대접받는 어르신들도 행복하지만, 결국은 내가 더 많은 내면의 행복과 위안을 얻는다. 그래서 한다.”

좀 한가해졌을 때 권하는 회와 떡국, 잡채 등 준비된 음식을 맛봤다. 250인분가량 준비했다는 말이 믿기지 않을 만큼 회를 비롯한 음식들이 싱싱하고 맛깔스럽다. 정성스럽고 힘든 준비과정이 음식들 속에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이 행사는 이 대표가 2009년 서울서 귀향해 함양읍 운림3리 청년회장을 맡아 어버이날 경로잔치를 주도하면서부터 시작됐다. 다음해에 사정이 여의치 않아 청년회 주최로 경로잔치를 열 수 없게 됐고, 이때부터 이 대표는 사비를 털어 고향 어르신 모시기에 나섰다.

▲ 이 대표가 어르신들께 음식을 권하며 활짝 웃고 있다.
100여명 수준이던 잔치는 계속 늘어 200여명이 참석하는 큰 잔치가 됐다. 준비가 만만치 않게 될 것은 당연지사. 며칠 전부터 음식 준비하랴 일정 맞추랴 여러 가지로 힘들고 신경 쓰인다. 떡국은 굳을까봐 당일 새벽 방앗간에서 가래떡 뽑아와 바로 썰어 끓이고, 회나 다른 음식들의 신선도와 청결에 힘을 쏟아야 한다. 드는 정성이 여간이 아니다. 아내 홍인순 씨와 8명가량의 봉사자들이 아니면 지금껏 이어오기 어려웠으리라.

이 대표는 “아내와, 도와주는 분들이 정말 고생이 많다. 묵묵히 기꺼이 따라주는 그 마음을 늘 고맙게 생각하면서도 충분히 표현하고 보답을 못해 미안하다”며 묻어둔 마음을 털어놓는다. 

모교인 위림초등학교 동창회장으로도 봉사하고 있는 이 대표는, 더불어 행복한 함양을 만드는 데 관심이 많다. 그래서 이런 경로잔치 같은 따뜻한 마음들이 고향 전체에 퍼지길 바라고 그 목표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부터 오일창 전 함양교육장 등과 함께 ‘더불어 잘사는 세상’을 만들자는 ‘둥근촌함양포럼’(회장 오일창)을 주도, 발기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이 대표는 “둥근촌 이름을 걸고 고객의 기부를 조금씩 모아 경로잔치를 하는 음식점 30여 곳을 확보하면 함양의 경로 분위기, 정말 좋아지지 않겠나”며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그가 꿈꾸는 둥근촌은 ‘정직·자유·행복’을 슬로건으로 내세운다. 소외된 이웃을 돕고 지원하면서, 회원 모두가 CEO로서 정직한 부(富)를 축적하고 서로 도움과 유익을 도모하자는 모임이다.

 
▲ 이재철 대표가 경로잔치에 오신 어르신들께 불편한 사항은 없는지 환담을 나누고 있다.
“천태만상인 세상에서 사람들은 과거 모습에 얽매이는 경향이 많다. 둥근촌은 서로의 현재 모습, 장점만 바라보고 생산적인 일에 매진해 윈-윈하자는 모임이다. 현재 귀촌한 분들이나 지식인, 덕망있는 분들이 속속 합류 중이다. 오일창 회장님과 손발이 잘 맞아 순조롭다. 회원 120명을 채워 3월 중 창립총회를 열 계획이다.”

둥근촌은 정치·종교·지역 등 일체의 차별과 편향을 거부한다. 함양의 상징인 지리산과 상림의 포용과 사랑의 정신을 닮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이 모임에서 주춧돌이 튼튼히 놓여질 때까지 심부름만 하고 창립 후에는 아무 직책도 맡지 않겠다”고 잘라 말한다. 모임을 주도한 사람이 회장 등 주요 직책까지 맡으면 개인적 목적이나 이익을 위해 모임을 만들었다는 뒷담화가 나올 게 뻔하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을 위한 잔치나 동창회, 둥근촌 등 봉사 활동들은 모두 더불어 잘사는 세상을 추구하는 이 대표의 철학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한 번 생각이 정해지면 탱크같이 밀어붙이는 추진력으로 정평이 났다. 그래서 서울에선 사업으로 크게 성공도 했다.

“고향에선 돈과 이익을 추구하기보다 소외된 이웃을 챙기고 품위 있고 살기 좋은 고향 만드는 데 헌신하려 한다. 혼자서 꾸면 꿈이지만 여럿이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 같은 꿈을 가진 사람들이 뜻을 모으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탁 트인 목소리로 또랑또랑 말하는 그의 눈빛에서 왠지 모를 확신 같은 것이 느껴졌다. 함양/박철기자

▲ 이 대표가 경로잔치 후 식당 앞에서 어르신들을 배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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