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 지켜온 역사 산물, 성곽의 보존과 활용(2)
우리 삶 지켜온 역사 산물, 성곽의 보존과 활용(2)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02.10 18:11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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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교/진주문화원 연구실장·문화재청 무형유산지기

성곽이란 어떤 특정집단이 그 집단의 보호를 목적으로 유형의 공간을 확보하여 겹으로 쌓는 토목 및 건축구조물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성(城)은 내성을 의미하지만 성곽(城郭)은 내성과 외성을 총체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즉, 성곽이란 거주 주체들의 일정한 공동생활을 확보하고 구조 물건에 서로 연결성을 갖추고 있으면서 외부에 있어서 단절성을 띤다. 이는 군사 및 행정 목적의 전통구조물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전통구조물이란 성곽이 당시에 필요한 군사방어 시설물로서의 기능이 있었지만, 현재는 성곽의 기능은 상징적일 뿐 어떤 역할도 하지 못하게 됨으로 전통으로 불러야 될 것으로 본다.


우리나라 사적 중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이 성(城) 또는 성지(城址)이다. 이처럼 많은 성이 언제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는지 그 연대는 명확하지 않다. 이미 기원전 18년에 백제 온조왕이 위례성에서 즉위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기원전부터 축성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현재까지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되어온 백제 초기 토성으로 추정되는 풍납토성과 개루왕 5년(132)에 축조된 북한산성 등이 남아있어 당시의 규모와 형태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성곽은 처음에는 간단한 목책(木柵)의 시설물로부터 시작하여 차츰 토성으로 발전해 갔으며, 그다음 단계로 많은 인력과 경비가 소요되는 석성을 쌓았다. 목책성이나 토성, 석성 등은 그 출현시기가 각기 다르다. 성곽은 시대적 변화에 따라 종류별, 축조방식별, 거주 주체별 등 그 용도에 따라 다양하게 축조술이 발전되어 왔다.

성곽의 분류는 기능별, 입지 조건별, 성벽 재료별로 구분할 수 있다. 우리나라 성을 기능별로 보면 도성, 읍성, 산성, 행성(行城), 기타로 나눌 수 있다. 입지 조건별로 보면 산 위에서 쌓은 것으로 산성이 있다. 이는 산꼭대기 주위를 둘러쌓은 테뫼식과 계곡을 낀 몇 개 봉우리를 둘러쌓은 포곡식으로 나눈다. 또 평지에 쌓은 평지성, 배후에 산을 끼고 쌓은 평산성이 있다. 그 중에서도 산성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성벽 재료별로 보면 먼저 도성이다. 이는 수도의 방어를 위하여 구축한 성곽으로 백제 부여와 고구려 평양에는 외곽을 두른 나성의 일부가 아직 남아 있어 도성이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신라에서는 도성을 축조하지 않고 경주를 둘러싼 산 위에 남한산성, 명활산성 등을 배치하여 수비하였다. 한편 고려와 조선시대 도성은 국도의 시가지를 둘러싼 주위의 산능성을 따라 성벽을 구축하였다. 봉건사회에서 절대권자인 왕이 거처하며 통치하는 곳에 궁궐을 짓고 관청건물이 축조되었다. 이를 중심으로 성벽이나 담장으로 둘러싸는데 이를 궁성이라 한다. 한편 지방도시를 방어하기 위한 읍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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