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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02.18 18:24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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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

 
아주 친한 친구 하나가 이달을 끝으로 정년퇴직을 한다고 한다. 나도 몇 년 후에는 같은 신세가 된다. 생각해보니 그 친구도 나도 정말 수고가 많았다. 사실이 그러니 별로 쑥스러운 말도 아니다. 어디 우리만 그런가. 이 시대의 모든 이들이 실로 엄청난 수고를 하며 인생을 살아왔다. ‘백세인생’이라는 노래가 요즘 크게 유행이라니, 그게 정말이라면 퇴직 후에도 우리는 한참을 더 살게 될지도 모르겠다. 30년? 혹은 40년? 짧지 않은 세월이니 그것도 이젠 좀 본격적인 인생의 일부로 고려를 해봐야 할 것 같다. 지금까지 수고랄까 고생이랄까 아무튼 여러 가지로 힘들게 살아왔으니 남은 노후는 좀 힘들지 않게, 편하게, 즐겁게, 만족스럽게, 행복 속에서 살 수 있다면 좋겠다. 그래서 이런 희망사항들을 (지극히 인간적인, 그러나 지극히 실질적인 소망들) 닥치는 대로 한번 나열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느님이든 조상님이든 나랏님이든, ‘만일 하실 수 있거든’ 좀 들어주시면 좋겠다.

1. 제발 좀 남북통일이 됐으면 좋겠다.
2. 정치하는 사람들이 제발 좀 제대로 나라걱정, 국민걱정을 해줬으면 좋겠다.
3. 미중러일에 치이지 않는 강하고 부유한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
4. 아니, 그 이전에, 사회 구석구석 좀 합리적인(이성이 지배하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5. 사람도, 환경도, (특히 강물도) 좀 깨끗해졌으면 좋겠다.
6. 모든 것이 좀 더 고급스러워졌으면 좋겠다. (총체적인 저급함에 이젠 지칠 만큼 지쳤다.)
7. 사람들이 서로 좀 용서하고 사이좋고 사랑했으면 좋겠다.
8. 아니, 그 이전에, 무시하고 함부로 하고 싸우고 해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9. 실업, 빈곤, 연포-결포-출포의 문제가 해결됐으면 좋겠다.
10. 고질적인 동서, 남북, 상하, 좌우의 분열과 다툼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내가 뭐 이렇게 대단한 것만 바라는 것은 또 아니다. 이런 것도 있다.

11. 모든 자동차가 전기차나 수소차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12. 모든 도시에 꽃과 나무와 숲이 공존했으면 좋겠다.
13. 제대로 작품같은, 재미있는 영화, 드라마들이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막장드라마는 퇴출!)
14. 스포츠뉴스를 문화뉴스로 대체했으면 좋겠다.
15. 인간들이 백해무익한 SNS에서 해방됐으면 좋겠다.
16. 우리나라가 바이오 의약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됐으면 좋겠다.
17. 도시 거리에는 유럽처럼 아름다운 노면전차가 다녔으면 좋겠다.
18. 건축허가 때는 반드시 미학심사가 있어서 아름다운 건물들이 많이 세워졌으면 좋겠다.
19. 학교에서 문학-음악-미술-체육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20. 세계최고 수준의 이공계 대학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극히 일부지만, 늘어놓고 보니 밥상머리에서 아내와 늘상 하던 이야기들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이런 것이 간절한 소망들이다. 건강이나 자식걱정이야 너무 기본이니까 새삼 말할 것도 없다. 적어도 이런 것들이 이루어진 세상에서 인생 3막을 살았으면 좋겠다. 내친 김에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추가하기로 하자.

21. 우리 동네에, 사라져버린 그 맛있는 빵집이 다시 들어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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