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가 있는 농촌형 승마 명소로 만들겠다”
“테마가 있는 농촌형 승마 명소로 만들겠다”
  • 함양/박철기자
  • 승인 2016.02.23 18:37
  •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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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승마클럽 정명수 대표

▲ 함양승마클럽 정명수(왼쪽) 대표가 초등 5, 6학년 단원들과 기념촬영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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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위한 장학사업 고민하다
불모지 함양에 ‘승마장’ 도전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간다”
어려운 형편에서도 투자 계속

승마시스템 타 지자체 벤치마킹
지역 여러학교와 승마체험 교류
전국최고 유소년 승마단 육성 꿈
인재육성·지역사회 기여 ‘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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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마 붐과 도전

우리 DNA 속에 흐르는 기마민족의 피가 승마의 인기를 타고 되살아 나고 있다. 우리는 드넓은 대륙을 누비며 호령하던 기마민족의 후예다. 광활한 영토를 잃고 반도에 정착하며 호방한 기상은 사라지고 집안싸움에 몰두하는 민족이 됐다. 대륙을 잃은 뒤의 역사는 익히 아는 바다.

‘승마’ 하면 ‘특수 스포츠, 경마, 귀족’ 같은 이미지가 먼저 떠올라 낯설다. 궁벽한 시골 함양에 승마장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고작 인구 4만의 농촌에 웬 승마?’ 하는 의아심이 먼저 들었다. 누가 무슨 생각으로 불모지에 도전했는지, 척박한 승마 인프라에 운영은 제대로 되는지 궁금했다.

주말인 20일 오후 2시께 함양승마클럽(함양읍 삼휴길 134)을 찾았다. 시가지를 벗어나 나지막한 산과 숲, 자연에 안긴 널찍한 마장과 시설들이 아늑하다. 실외 스피커에서 ‘낭만 고양이~’와 막걸리 같은 라디오 DJ 목소리가 어우러지고 있다. 산만한 음악소리는 오연한 자세로 말을 타는 사람들과, 승마의 ‘엘레강스’한 이미지와 기묘한 부조화를 자아낸다.

▲ 성덕대학교 김영철 재활승마과 교수와 정명수 대표가 대담 중인 모습.
사무실로 들어서자 정명수(53) 대표가 성덕대 김영철 재활승마과 교수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날은 마침 대구 성덕대학교 승마단과 교류 시합이 있는 날이었다.

떠들썩한 환경에 대해 정 대표는 “말은 소리에 극히 민감하다. 미리 소음에 적응하게 해 외출이나 환경이 갑자기 바뀔 때를 대비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불모지에서 어떻게 승마를 시작하게 됐는지 물었다.

“처음에 고향을 위해 장학사업을 할까 무얼 할까 고민했었다. 3~4년 전에 승마 붐이 일기 시작했는데 시골에는 전혀 혜택이 없었다. 그래서 고향 아이들에게 기회를 줘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서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 어릴 때 소 몰고 타던 기질이 있어선지 의외로 아이들이 담력도 있고 잘 탄다.”

옆에서 김 교수가 “선수 한 명 키우는 데 월 300만원 이상 들어간다. 이런 시골에서 이렇게 좋은 시설 유지해나가는 게 대단하신 거다”라며 엄지를 치켜든다. 승마 인구와 인프라가 변변찮은 시골에서 수익은 제대로 날까?

“말 16필에 4명 인건비, 관리운영비 등 솔직히 벅차다. 한 마디로 ‘올인’하고 있다. 여기서 돈을 벌려 했다면 차라리 공장을 짓거나 했겠지. 지금도 계속 승마 쪽으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창원에 제조업 공장을 가지고 있는데 거기서 번 돈을 계속 여기 투자하고 있다.”

▲ 국내 최대 규모의 실내승마장.
▲ 마방 및 퇴비사 모습.
정 대표는 창원에 소유하고 있는 제조업체에서 승마장 운영비로 매년 거액을 수혈하고 있다. 본인의 월급도 기본 생활·문화비 외에는 대부분 승마장에 들어간다고 한다.

“한계가 오더라. 여기서 내가 꺾이면 안 되겠다 싶어서 대외 교류를 시작했다. 각지 대학교 승마단과 유소년 승마가 가장 활성화돼 있는 미리내 승마장(경기도 양평) 등과 교류하고 있다. 미리내에서 하는 유소년 승마대회가 마사회 대회 다음으로 큰데, 거기 교관들이 우리 아이들 너무 잘 탄다고 (감탄하더라). 유치원부터 중학생까지 대부분 무료로 말을 탈 수 있게 해준다. 비싸서 못 탄다는 승마를 아이들한테는 동등하게 기회를 주고 싶다.”

이 말을 들은 김 교수가 “정부에서 해야 할 일을 사장님이 다 하시네” 하며 웃는다. 열악한 수익 구조에도 지역의 미래를 위해 어려움을 감수하는데 지자체 등의 지원이 없는지 궁금했다.

“승마장 처음 지을 때 마사회에서 ‘10억원 지원해줄 테니 제대로 한번 지어봐라’고 제안해 왔다. 거절했다. 대신 함양 관내 학생들이나 지원해 달라고 했다. 우리 실내마장이 (저런 타입은) 전국에서 제일 크고 독특하고 유일하다. 동선 등 시스템도 아주 잘돼 있다는 평을 듣는다. 그래서 다 지어 놓으니 마사회, 타 지자체 등에서 (이곳을) 벤치마킹을 많이 했다. 또 가정 형편이 안 좋아 말 못타는 아이들을 계속 키워주고(지원) 있다. 이런 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니까 올해부터 지자체에서도 지원하기로 하고, 마사회에선 지난해에 지원을 받았다.”

 
그의 말대로 KRA한국마사회 측은 김영규 부회장이 여러 번 함양승마클럽을 방문해 관심을 나타냈다. 지난달 27일 방문한 김 부회장은 마사회와 농식품부의 올해 중점과제인 유소년 승마단 활성화와 농촌관광승마산업 발전에 대해 언급하고 지원을 약속했다.

위림초등학교(교장 이정구) 주도로 운영하는 함양군 유소년 승마단은 2013년 창단, 2년도 채 안돼 성적을 내기 시작했다. 2015년 마사회 주최 유소년 승마대회 등 지금까지 10여 회의 각종 대회에서 탁월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특히 지난해 11월 영천시연합회 승마대회에선 참가학생 전원 무감점이라는 기록을 세워 주위를 놀라게 했다.
정 대표는 어려운 형편임에도 인재 육성과 지역사회 기여에도 적극적이다.

“관내 중학교, 초등학교 등에 장학금도 출연한다. 승마협회가 있지만 자체 자본이 있는 게 아니라서 다 내 사비로 나간다. 그렇다고 내 이름 걸고 장학금 주기도 쑥스럽고 해서 승마협회 이름으로 준다.”

◆승마가 뭐길래?
2014년말 기준 우리나라 말산업 규모는 3조2000억원, 승마 인구수(정기·체험 포함)는 90만명에 육박한다. 가파른 성장곡선을 그리고 있다. 정부는 말산업 특구 지정, 농어촌형 승마시설 지원 등의 정책을 꾸준히 펴고 있다.
농식품부는 “올해부터 승마가 전국소년체전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것을 계기로, 유소년용 승용마 보급을 확대하고, 유관기관과의 협업 강화를 통해 승마 붐을 조성하는 등 새로운 수요에 적극 대처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승마는 사람과 동물이 함께 호흡하며 즐기는 거의 유일한 스포츠다. 큰 동물과 교감·대화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심리적 안정감·성취감·생명존중의식·대인관계 향상 등의 효과는 팍팍한 현대인의 심성에 단비가 될 수 있다. 오죽하면 ‘재활 승마’라는 스포츠 재활치료가 생겼을까?

 
 
신체적으로도 승마는 근육과 관절을 사용하는 전신운동이라 장 운동을 통한 복부비만 감소, 변비 해소, 자세교정, 유연성, 다이어트 등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특히 청소년의 경우 신체 균형, 성장 촉진(2012년 용인대 국제스포츠과학연구원 ‘청소년 승마운동 효과에 관한 연구’- 승마 12주 후 초등생 1.6cm, 중학생 0.5cm 성장)과 심리적 안정, 정서 함양 등의 효과가 검증되고 있다. 부모들의 골치를 썩이는 청소년 인터넷·게임 중독 해소에도 큰 도움이 된다. 정 대표는 “우리 유소년 승마단원들은 승마를 시작한 후 게임을 거의 하지 않게 됐다”고 자신한다.

◆승마로 꾸는 꿈
승마는 자연에서 말 타고 즐기며 심신의 힐링을 즐기는 친환경 레저스포츠다. 제조업이나 특별한 산업 기반이 없는 함양 같은 농촌은 농업과 관광 등에 미래 먹거리를 기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따라서 승마장 같은 레저산업이 활성화되면 그로 인한 교육·체험관광이나 연관 파급효과가 상당히 크다.

정 대표는 “승마의 트렌드가 엘리트승마에서 레저승마 위주로 바뀌고 있어 농촌지역 승마장에 희망이 있다”면서 “농촌 자연의 특성을 살려 강변형·산악형·농로형·초원형 같은 테마가 있는 농촌형 승마장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도시인들이 도시에서 승마를 배워 농촌의 자연에서 말 타고 즐길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놓으면, 자연스럽게 도농교류가 이뤄져 관련 일자리도 창출되고 농촌 경제도 활성화된다는 것.

 
 
▲ 함양승마클럽 유소년 선수들이 말과 교감을 나누며 의젓하게 승마를 즐기고 있다.
정 대표는 “지리산 자락 함양은 사통팔달 교통과 천혜의 자연, 다양한 문화관광 자원을 간직한 선비의 고장”이라며 “우리 승마클럽을 교육 여건이 열악한 이곳에서 교육기관으로 잘 운영해 청소년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승마산업을 고향 함양의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키우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말한다. 유소년 승마단을 전국 최고로 육성하겠다는 포부도 잊지 않는다.

잠시 후 성덕대와 함양승마클럽 유소년 선수들이 말과 함께 몸을 풀기 시작한다. 앳되고 장난기 많은 초등 5, 6학년 아이들이 말에 올랐다. 사뭇 달라진다. 의연한 자세로 말등의 요동에 리듬을 맞추고,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교감하고, 장애물을 가뿐히 뛰어넘는다. 좀 전의 그 아이가 맞는지 의심이 들 만큼 의젓하고 진지하다. 대다수 그 또래 아이들은 산만하고 집중할 줄 모른다. 그런 만큼 말과 한몸이 돼 오염되지 않은 자연 속을 거니는 아이들의 모습이 더욱 대견해 보였다. 아울러 그들의 머리 위로 부서지는 햇살만큼 밝은 함양승마클럽과 함양 관광의 미래가 보이는 듯했다. 함양/박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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