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 지켜온 역사 산물, 성곽의 보존과 활용(5)
우리 삶 지켜온 역사 산물, 성곽의 보존과 활용(5)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03.09 18:26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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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교/진주문화원 연구실장·문화재청 무형유산지기

경남의 성곽을 강과 해안에 따라 황강, 남강, 남해안, 낙동강 유역 등 7개 유역으로 나누어 지역별로 문화재 지정 대표 성곽에 대해 알아보도록 한다.


첫째, 황강 유역의 성곽으로 거창, 합천지역이 이에 포함된다.

거열성은 거창군 거창읍 상리에 있는 돌로 쌓은 산성으로 일명 건흥산성이라 부른다. 부근에 있는 또 다른 성터와 함께 신라와 백제가 치열한 싸움을 하였던 곳으로 전해 온다. 신라 문무왕 3년(663) 이곳에 웅거한 백제의 부흥운동군을 신라 장군인 흠순과 천존 등이 공격하여 700여명의 목을 베었다는 기록이 있다. 성 안에는 망루를 세운 7곳의 흔적과 건물터, 우물터 등이 있으며, 동쪽에는 수원(水原)이 있다. 동쪽 성문터 밖에는 병사의 훈련이나 말을 키웠을 것으로 보이는 평탄한 대지가 있으며, 벽돌과 삼국시대의 붉은 기와조각이 출토되었다.

해발 90m의 매봉산 정상을 둘러쌓은 합천대야성은 흙과 돌을 이용하여 쌓은 성이다. 이 곳은 삼국시대 때 백제와 신라 서부지방의 접경지대로, 신라 진흥왕 25년(565)에 신라가 백제의 침공을 막기 위해 쌓았다. 성벽의 길이는 300m 정도인데 대부분 훼손되어 원형이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건물터와 적을 막기 위해 세운 울타리의 흔적이 남아있다.

둘째, 남강 유역의 성곽으로 함양, 산청, 진주, 의령지역이 이에 속한다.

사근산성은 함양군 하산리 사근장터 뒤 연화산에 있는 돌로 쌓아진 산성이다. 이 산성은 영남지방과 호남지방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이며, 지형 상으로도 세 방향이 남강을 끼고 절벽을 이룬 전략지로서 호남지방의 곡창지대를 노리는 왜구의 침입을 차단하는 중요한 구실을 했던 곳이다.

황석산성은 해발 1190m의 함양 황석산 정상에서 뻗은 산마루를 따라 골짜기를 감싸며 육십령으로 통하는 요새지에 쌓은 삼국시대 산성이다. 선조 30년(1597)에 왜군이 침입하자 이원익은 왜군이 쳐들어올 것을 판단해 주민들과 성을 지켰으나 백사림이 도망가자 결국 함락당한 사연이 있는 성이다. 현재도 성 안에는 작은 계곡이 있어 물이 마르지 않기에 전략적으로 가치 있는 곳임을 알 수 있다.

진주성은 진주의 역사와 문화가 집약되어 있는 진주의 성지(聖地)이다. 본시 토성이던 것을 고려조 우왕 5년(1379)에 진주목사 김중광이 석축하였다. 성의 둘레는 1.7㎞이다. 성내에는 촉석루, 창열사, 의기사, 북장대, 서장대, 영남포정사, 국립진주박물관, 임진대첩계사순의단, 촉석문, 공북문, 그리고 호국사 등이 있다.

의령군 정곡면 죽전리에 있는 호미산의 정상부에 약 200m 가량의 흙으로 쌓아 올린 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호미산성은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인 망우당 곽재우 장군의 전적지 가운데 하나이며, 호미산은 산의 형태가 호랑이 꼬리를 닮았다 해서 얻은 이름이다.

다음시간에 셋째인 남해안 서부유역의 성곽으로 하동, 남해, 사천지역을 소개로 이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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