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 지켜온 역사 산물, 성곽의 보존과 활용(6)
우리 삶 지켜온 역사 산물, 성곽의 보존과 활용(6)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03.16 18:24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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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교/진주문화원 연구실장·문화재청 무형유산지기

지난 시간에 이어 셋째, 남해안 서부유역의 성곽으로 하동, 남해, 사천지역을 소개한다.


하동읍성은 조선 태종 17년(1417)에 축성된 조선 전기의 전형적인 연해읍성(沿海邑城)의 하나이다. 일명 고현성이라 하며 해발 149m의 양경산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잔존둘레는 1,400m, 폭 4.5m이며, 잔존 최고높이는 5.2m 정도의 규모이다. 동·서·남쪽 체성 중간에는 옹성을 두른 문지와 그 좌우 및 성 모퉁이에 방대상(方臺狀)의 치성을 배치하고 체성 바깥에는 다시 해자를 두었다. 또 해자와 나란하게 양마장(羊馬墻)을 두른 구조로 되어 있다.

하동 고소성은 신라 때 돌로 쌓은 산성으로 능선을 따라 5각형에 가까운 형태를 띠고 있다. 지리산의 험한 산줄기를 뒤에 두고 섬진강이 앞을 가로막는 천연의 요새로서 남해에서 호남지방으로 들어가는 중요한 길목이다. 이러한 지형을 이용하여 크고 견고하게 지은 산성이다.
대국산성은 남해군 설천면 진목리 대국산의 정상에 지어진 산성으로, 산꼭대기를 빙 둘러 돌로 쌓았다. 언제 쌓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대국산성은 부근에 있던 옛 남해현을 지키던 읍성으로 추측된다. 성안에서 여러 종류의 토기조각과 기와조각 등이 발견되었으며, 성의 보존 상태가 매우 좋아 학술상으로도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사천선진리성은 일제지정 문화재의 재평가와 관련, 등급 조정키로 함에 따라 1997.1.1.일자 사적 해제 후 지방지정문화재로 지정 권고되었다. 사천선진리왜성은 경남도 문화재자료 제274호로 사천시 사천읍 선진항의 북방에 있는 왜성이다. 이 왜성은 삼면이 바다에 접하고 동쪽만 육지에 닿아 있는 반도 지형에 세워졌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지은 성으로, 규모나 구조면에서 볼 때 활동의 주요 근거지로 만들어진 것이며, 이순신 장군에 의해 격파당하기도 하였다. 현재 흙으로 쌓은 성벽이 1㎞ 가량 남아 있으며, 돌로 만든 누(樓)는 무너졌으나 대체로 성의 규모대로 터가 남아 있다.

각산산성은 사천시 대방동 각산의 정상에는 횃불과 연기를 이용해 소식을 전하는 옛 통신수단인 봉화대가 옛 모습대로 남아있고, 서쪽 등성이에 각산산성이 남아있다. 고려 원종 때에 성과 봉화대를 만들고, 줄항터에는 구라량영의 본거지를 두어 이곳을 지켰다. 그 후 각산은 봉화대가 자리하는 곳이 되었으며, 봉수는 남쪽으로 대방산, 서쪽으로 곤양의 우산봉수, 북쪽으로 사천 안점봉수와 연결되었다.
넷째, 남해안 중부 유역의 성곽으로 고성, 거제지역을 소개한다.

거류산성은 고성군 거류면 해발 571m의 거류산에 있는 산성으로 산 정상부에서 서쪽 경사면을 성내로 하여 돌로 쌓은 산성이다. 지형상 성내를 서쪽으로 택한 것은 동쪽과 남쪽 바다를 경계하여, 신라는 물론 왜구를 방어하기 위함인 듯하다. 소가야의 중심지였던 고성읍성의 축조시기를 생각하면, 이 성은 삼국시대에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거제 둔덕기성은 7세기 신라시대 축조수법을 알려주는 중요한 유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현문식 구조인 동문지(東門址)와 삼국시대 처음 축조되고 고려시대 수축된 성벽 등은 축성법의 변화를 연구하는데 학술적으로 중요한 자료이다.

거제 오량성은 조선 연산군 6년(1500)에 쌓은 성으로, 둘레는 1,172m, 높이 2.61m, 폭 5m 정도이고 북쪽과 서쪽이 양호한 상태이다. 성 안은 대부분 민가가 들어선 마을이고 성 밖은 논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조선 초기 이후의 성의 형태를 살피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다음시간에 다섯째, 남해안 동부 유역의 성곽으로 창원지역을 이어서 소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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