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집행
공무집행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11.28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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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숙/시인
“오늘 고영진 교육감이 여기 왔는데 당신은 왜 여기 안 왔소?” 진주에서 손님이 와서 만나고 있는데 지인으로부터 이렇게 전화가 왔다. 교육지원청 청사 부지내에 지은 유치원개관식에 테이프 커팅을 하고 있으니 빨리 와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로 갈 수가 없었다. 이는 ‘하동초감람석운동장비상대책위원들’을 오라는 신호로 나 혼자 오라는 뜻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런 자리에 “감람석운동장 조성의 책임자를 문책하라”는 현수막을 들고 갈 수도 없었고, “8억 5000만 원 예산 쓰고 아이들은 신음하고 학부모는 통곡한다”는 손팻말을 들고 갈 수도 없었다. 이는 잔칫집에 축하하러 온 손님을 대하는 기본 예의가 아니었으므로. 그런데 따지고 보면 현재 우리 처지가 그런 예의 운운 할 한가로운 입장이 아니다. 지금 하동초 아이들이 감람석 운동장에서 뛰어논 이 댓가를 앞으로 다가오는 시간 속에서 어떤 형태로 치러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향후 10년, 20년 후가 무섭고 두려워서 잠을 못 잔다는 부모들이 한 둘이 아니다. 

왜 하동초등학교는 감람석을 걷어내는 일로 25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 임시휴교에 들어가야 하는가. 이런 상황이면 경남교육의 총수로서 그 먼 길에 어렵게 이곳까지 왔으면 유치원 개관식만 보고 가서는 안 된다. 지금이 비록 선거철은 아니지만 그래도 선거운동 할 때 학부모들에게 자신의 한 표를 부탁할 때의 그 양심이 채송화씨만큼이라도 남아있다면 이리 처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적어도 형식적으로라도 하동초감람석운동장 현장부터 직접 돌아보며 학교 관계자 뿐만 아니라 이런저런 불안에 떨고있는 학부모들을 만나보는 것이 최소한의 교육자적 양심이고 상식일 것이다. 그러나 교육감은 물론 교육관료나 교육공무원들은 학부모들의 타들어가는 이런 마음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이래서 공무원을 철밥통이라 하는지도 모른다. 모 기관에 찾아가 감람석운동장 시료를 채취해간 지 한 달이 지나도록 왜 그 결과가 안 나오느냐고 묻자 관계자는 “이 예산을 집행해야 할 담당자가 결혼하고 신혼여행을 갔다가 오늘에사 출근하는 바람에 그랬다”는 것이다. 그래서 언성이 좀 높아지자 “여기 싸우러 왔느냐, 그러면 다음부터 안 만나준다”고 너무도 태연하게 이 말을 했다.

이래도 이 공무원에게는 이것이 다 공무집행인 것이다. 마치 국민의 혈세 5억으로 석면이 날리는 감람석을 아이들이 뛰노는 운동장에다 떡 깔아놓은 것도 공무집행의 결과였던 것처럼. 이는 먹어도 될 정도의 최첨단의 과학적이고 위생적인 운동장이라고 교장이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떠들어 댄 것도 공무의 집행이었다. 다시 3억 5000만 원을 들여 이를 걷어내고 마사토를 새로 까는 것 또한 공무집행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이제까지 이 제반 사안들에 대해서 책임을 느낀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러니 공무원의 공무집행이야말로 얼마나 좋은가! 마치 불법건축물도 어느 정도 시간만 가면 양성화가 되듯이 공무집행에 따른 치명적인 폐해(弊害)도 이와 흡사하게 다 면죄부를 받는다.

박희태 국회의장이 정의화 부의장에게 권한을 넘기고 자기는 그 시간에 누구 묘 앞에 가 서성거려도, 김선동 의원이 국회본회의장에서 최루탄 던진 것도, 이것이 터져 눈물콧물 닦아가며 한미FTA 비준안을 강행처리한 것도 모두가 다 당당한 공무집행이다. 이로 인해 국민들이 과연 그 어떤 열매를 누가 얼마나 따먹을 것이지는 아무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그러니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양식문제로 남는다.

그러나 공무원 소리를 들으려면 최소한 이 말 정도는 알아둬야 한다. 채근담에 이르기를 “관직에 거하면서 백성을 자식처럼 사랑하지 않으면 의관을 갖춘 도둑이다(居官不愛子民爲衣冠盜)”고 했다. 요즘 공무원 중에는 의관을 갖춘 도둑이 너무 많다. 특히 고위직으로 갈수록 더 심하다. 아니, 백성을 자식처럼 사랑하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공무집행이라는 명목으로 백성들을 더 이상 괴롭히지만 않아도 다행이다. 특히, 어린 학생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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