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선생님
이런 선생님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05.17 19:22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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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조카가 중학교 졸업반이 되어서야 좋은 담임 선생님을 만났다. 일학년 때는 이제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으로 담임을 맡은 선생님이었는데 매사가 서툴러서 애를 먹었다. 반에서 조카를 왕따시키는 아이가 있으니 절대로 비밀로 하고 잘 살펴달라고 하면 그 아이가 조카를 찾아와 정색을 하고 “내가 널 왕따시켰니? 담임이 내가 널 왕따시켰다고 난리네?”하고 묻는 기막힌 상황까지 겹쳐버리던 것이었다. 조카의 왕따와 담임의 섣부름까지 견뎌야 했다. 이학년 때는 담임이라고 상의만 하면 “알아, 셈도 알고 있으니까 니가 좀 참아, 너한테도 잘못이 없는 건 아니잖아?”하는 스타일이었으니. 둘 다 잘못이 있으면 둘 다 혼줄을 내든지. 반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것과 함께 우유부단한 담임까지 참아내야하는 괴로움을 더했었다.


그런데 이제 졸업반이 되어서야 믿음직한 선생님을 만났다. 이렇게 상찬을 드리면서도 이게 입방정이 되어 동티라도 나서 갑자기 그 선생님이 나쁜 선생님으로 돌변할까 두렵기도 하지만 상찬할 건 해야겠다. 우선 참 성실하시다. 내 집 공부방에서 함께 공부를 하는 조카의 말을 들어보면 수업 시간에도 친절하시고 화를 잘 안 낸다는 것이다. 조잘대는 조카의 입을 보며 저런 아이들을 수십 명과 함께 부대끼면서도 화를 안 낸다는 건 정말 대단한 너그러움이라고 짐작했다. 한 두 사람 아니고 일일이 친절하게 대하는 것 역시 깊은 마음 없이는 아무나 못한다.

선생님은 사회를 가르치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해준다. 집안에 돈이 많은 사람이 있었는데 욕심이 너무 많았는데 쫄당 망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아이들에게 돈이 가장 중요한 게 절대로 아니라고 했단다. 그리고 선생님 자신은 명문대를 나왔지만 명문대를 나온 사람이 다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아주 심술굳고 욕심이 많은 사람도 있다고 했단다. 게다가 시기 질투를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면서 여러분들은 절대로 시기와 질투를 하지 말라고 매일 얘기 한다는 것이다. 특히 시기 질투는 상대가 자기보다 잘할 때나 뭔가를 많이 가졌을 때 일어나는 심리상태이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시기 질투를 하는 그 자신에게 더 많은 상처를 입힌다고. “남이 잘하면 나도 잘해야지 하고 노력하면 금방, 금방 나도 잘 된대요, 큰엄마!”하면서 호들갑을 떨며 눈을 빛내는 조카를 보며 내 마음도 호들갑스럽게 고개를 끄득인다. 참으로 지당한 말씀이다.

가만히 잠시 생각하던 조카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큰엄마, 진짜 금방 잘 될까요? 내가 금방 공부 잘하게 되냐고요?”놀기 좋아하는 큰아빠를 닮은 조카가 금방 공부를 잘하게 될 줄은 난들 어떻게 알겠는가? 간단한 인수분해 문제 하나를 거의 반시간 넘게 붙들고 있는 조카를 나는 웃음을 참으며 쳐다봤다. 지집애 하고는. 내가 눈만 돌려도 핸드폰을 만지면서 금방은 무슨. 아무튼 조카의 담임 선생님은 조카 같은 아이를 너무 잘 아시는지 그런 저런 이야기를 매일 해주신단다. 정말이지 감사할 일이다.

평생 감사할 일이 며칠 전에 생겼다. 누구나 천적은 있게 마련일까. 유독 조카의 생김새를 가지고 조카를 볼 때마다 놀리고 모욕을 주는 아이가 있었다. 삼학년으로 진급을 하며 반이 서로 다른 반으로 배정이 되어 안심하고 있었는데 복도에서 만났는데 또 그랬던 것이다. 조카는 안심하고 있다가 졸지에 당한 놀림이라 모욕감과 짜증이 머리 끝까지 나버렸다. 그렇다고 여자인 조카가 남자인 그 아이를 때릴 수도 없어서 마구 엉엉 울어버렸다. 그러니 친구들이 알게 되고 결국 담임 선생님까지 알게 되었다.

조카가 초등학교 때부터 그 아이에게 놀림을 당했다는 걸 안 선생님은 학교폭력자치 위원회를 열었다. 담임 선생님의 재량으로만 끝낼 수도 있는데도. 상대 아이에게 '접근금지'라는 결과를 얻어낸 조카는 너무 기뻐했다. 조카의 엄마인 내 동서도 좋아하며 담임이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다. “형님, 진작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걸, 나도 애 보고만 참으라고 했으니...애한테 미안해요” 울먹이면서 어눌하게 말하는 동서를 보며 나도 울었다. 무엇보다도 조카가 부당한 모욕을 이제는 당하지 않게 되었고 모욕을 당한 자기 편에서 일을 처리한 사실을 몹시도 좋아했다. 당연한 일인데... .

나도 미안하고 기뻤다. 아이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은 제 엄마보다 나에게 더 많이 얘기했는데 별 생각도 해보지 않고 응,응, 하고 그냥 넘긴 일이 무엇보다 마음이 아프다. 세상에, 초등하교에서부터 그랬다면 거의 5년 동안 얼마나 치욕적이었을까. 상대 아이를 죽이고 싶은 스스로의 살의를 참기가 가장 어려웠다는 조카의 심경을 듣고는 할 말이 없었다. 게다가 옥상을 몇 번이나 오르락 내리락 했다니!!! 팔목도 그었다니..... . 상대에 대한 살의가 짙은데 실행하지 못해 화가 쌓이면 자기 살해 의지로 발전하는 게 사람의 속성일 것인데. 하늘이 도왔다. 아니지, 담임 선생님이 도왔다. 까딱 잘못했으면 조카가... 생각만으로 아찔하네.

이렇게 사람이 진정 사람을 위해, 그 사람의 행복을 위해 말하고 행동하면 이토록 위대한 선행을 창출하고 행복을 창출할 수 있는데. 이제 나도 늙었다고 뒤로 가지말고 죽는 그날까지 조카의 담임 선생님의 마음을 살려 정신 똑바로 차리고 행복을 창출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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