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제정 공로자 강영호
어린이날 제정 공로자 강영호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05.18 18:53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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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사 연구실장
 

‘동아일보’ 1921년 5월 1일자 3면 6단을 보면 다음과 같이 보도되었다.


“진주지방은 조선에서 맨 처음으로 소년운동의 깃발을 든 곳인데 오늘은 300여명 회원을 가진 진주 천도교 소년회 주최로 오후 3시에 선언문을 돌리고 밤에는 기념강연을 한다더라. 5월 1일은 조선에서 처음으로 어린이에게도 사람의 권리를 주는 동시에 사람의 대우를 하자고 떠드는 날이 돌아왔다”

1922년 발행된 <개벽지>에 의하면 “벌써 연전의 일로 기억된다. 경상남도 진주시내 소년들이 소년회를 조직하여 활동하다 일경에 체포되었다고 밝히고 있고 조선 전체의 소년들의 자각의 첫소리가 되었다”라고 기록했다.
또 1922년 천도교 월보와 어린이 잡지에서도 전국 소년회가 생기기전에 경남 진주에서 조직된 소년회가 맨 처음이라고 확실하게 밝히고 있다. 위와 같은 근거에 의하여 2011년 5월 5일 진주교육지원청 대강당에서 기념식을 하고 곧 이어 마당에 진주소년운동의 발상지라는 표지석을 세워 제막식을 거행했다. 이영달 박사께서 3년간 꾸준히 활동한 결과라는 보도가 있다.

진주시 신안동 423번지 소재 박은희(참조은)산부인과 인구에는 강영호 선생의 후손 정형외과 강기동 박사가 강선생의 흉상과 기념비를 세웠는데 일제 당시 동아일보 내용과 강동욱 기자가 쓴 신문기사가 그대로 새겨져 있어 행인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강영호 선생은 진주 봉곡동 출신으로 동학 접주이며 천도교 법사인 고만준 님의 아들 고경인과 함께 활동하게 되는데 진주초등학교 제 5회 동기생 5명이 여러 활동을 전개하게 된다. 소년운동도 함께 전개했었다.

강영호 선생은 동경대학 문학부 재학중 1923년 3월 16일 방정환 선생 하숙집에 모여 색동회를 조직하고 어린이 날을 제정할 때 진주활동을 알리고 진주정신을 그대로 이어가도록 지도한 공적이 있다.

강영호 선생은 1919년 3.1운동에 동참하고 친형 강상호 선생이 3.1운동 주도 후 일경에 체포되자 옥바라지를 하면서 진주청년회 임원으로 전단지를 만들어 경남 일원에 배포할 때 회계로 활동했다.

1927년 10월에는 신간회 진주지회 간사로 활동하고 1930년대에는 반제단을 조직해 항일운동을 전개하고 형평운동을 주도한 강상호 선생을 도와 협력하고 해외동포들을 도우자는 운동에도 동참하는등 꾸준하게 항일운동을 전개한 분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정부포상을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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