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서부, 전북 남원시 운봉읍에 위치한 바래봉(1165m)은 지리산의 수백개 봉우리 중 산 자체로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산이지만 전국 제일의 철쭉 군락지로 유명하다.

스님들의 바리때(밥그릇)를 엎어놓은 모습과 닮았다하여 붙여진 바래봉은 소백산과 함께 우리나라 대표적인 철쭉 명산으로 철쭉이 만개하는 5월에 집중적으로 찾는다. 5월중에서도 5월 중순이 철쭉산행의 최적기이다.

둥그스름하고 순한 산릉인데다 정상 주위는 나무가 없는 초지로 되어 있는 바래봉은 능선으로 팔랑치, 부은치, 세걸산, 고리봉, 정령치로 이어지며 정상에 서면 지리산의 노고단, 반야봉 촛대봉, 맑은 날엔 멀리 지리산 주봉인 천황봉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동쪽의 천왕봉에서 서쪽의 노고단에 이르는 지리산 주능선 전체가 파노라마처럼 전개되고 굽이치는 암봉이 공룡등을 연상케한다.

 

지리산에서 가장 유명한 철쭉밭이라면 세석평전을 꼽지만 지난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여느 군락지와 달리 목장 초원에 피어난 붉은 철쭉꽃으로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하며 우리나라 최고의 철쭉 감상지로 떠오른다.

바래봉의 철쭉은 1123m봉에서 바래봉 서쪽 아래까지 4km 이상 넓게 퍼져 있는데, 팔랑치에서 1.5km쯤에 가장 밀집되어 있다.

보통의 산 철쭉은 나무사이 제멋대로 자란 키에 드문드문 꽃이 달리고 연한 분홍빛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바래봉 철쭉은 거의 일률적으로 허리나 사람정도의 키에 무리지어 군락을 이루어 빽빽하고 둥그스름하게 잘 가꾸어 놓은 것 같고, 진홍빛으로 붉게 물들어 있다. 마치 공원이나 정원에 잘 가꾸어 놓은 철쭉을 옮겨 놓은 듯하다.

바래봉 철쭉은 바래봉 아래에 자리 잡은 축산기술연구소와 깊은 관계가 있다. 원래 바래봉 일대는 숲이 매우 울창했다. 그런데 1970년대 초 이곳에 한국·오스트레일리아의 시범 면양 목장을 조성하게 되는데, 식성이 좋은 면양이 잎에 독성이 있는 철쭉만 제외하고 대부분 먹어 치우면서 지금의 상태가 됐다.

당시엔 출입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리산 능선을 종주하며 바래봉을 지났던 산악인들의 입을 통해 소문을 타게 됐고 이후 사진작가들이 바래봉을 배경으로 멋진 작품들을 발표하면서 일반인들에게 큰 관심을 끌게 되었다. 그러다 1990년대 들어 일반인들의 산행이 가능해지면서 바래봉은 우리나라 최고의 철쭉꽃 감상 명소가 됐다.

바래봉 철쭉의 개화시기는 기온에 따라 차이가 심해 한번에 산 전체의 철쭉을 볼 수는 없다.

보통 4월 하순 산 아래부터 피기 시작해 한달간에 걸쳐 정상 부근에서 팔랑치에 이르는 능선까지 피어 올라간다. 5월 10~15일 사이 팔랑치 부근의 철쭉군락지의 철쭉이 만개하는 적기이나 꽃샘추위, 이상난동 등 기상상태에 따라 만개시기에 차이가 일주일 이상 나기도 한다.

철쭉은 산 중간부 구릉지대, 8부능선의 왼쪽, 바래봉 정상아래 1100m 부근의 갈림길에서 오른쪽 능선을 따라 팔랑치로 이어지는 능선에 군락을 이루고 있다.

특히 가장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곳은 정상부근에서 팔랑치에 이르는 약 1.5km 구간으로 팔랑치 부근이 가장 많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팔랑치에서 능선을 계속 따라 1123봉으로 오르는 능선에도 군락을 이룬다.

철쭉꽃을 즐기려는 등산객들은 먼저 축산연구소에서 바래봉 정상으로 바로 올랐다가 남서쪽 세걸산 방향으로 하산하면서 철쭉 군락지를 따라 팔랑치까지 간다. 또한 팔랑치에서 산판길을 따라 산덕리-운봉읍으로 내려가는 길과 계속 직진하여 세걸산-정령치까지 가는 종주코스, 내령리-뱀사골 입구로 하산하는 코스가 있다. 장금성기자ㆍ사진/한국의 산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