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상무사展…진주상인 100년 역사를 돌아보다
진주상무사展…진주상인 100년 역사를 돌아보다
  • 김상목기자
  • 승인 2016.05.23 18:36
  • 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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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4일까지 국립진주박물관 기획전시실

 
국립진주박물관(관장 최영창)은 24일부터 7월 24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특별전 ‘진주상무사 : 진주상인 100년의 기록’ 특별전을 개최한다.

진주상무사(회장 소정문)와 진주상공회의소(회장 하계백)의 기증으로 이루어진 이번 전시에는 ‘사전청금록’(진주 지역 사전의 임원명단) 등 기증 유물과 보부상 관련 문화재 등 총 200여점이 출품된다.

국립진주박물관은 지난 2014년 12월과 2016년 2월 두 차례에 걸쳐 진주상무사와 진주상공회의소로부터 각종 문서와 인장, 현판 등 86건 98점의 유물을 기증받아 기증 유물을 보존처리하고 특별전을 준비해 이번에 일반에 최초로 공개한다.

이번 특별전은 ‘진주상무사’라는 상인 조직을 중심으로 진주지역 상인의 역사를 조명하는 전시다.‘진주지역 상인들의 조직’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 진주상무사는 진주 지역의 보부상 조직에 그 유래를 두고 있으며 현 진주상공회의소의 전신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전시는 소중한 문화유산을 안전하게 보존·관리하여 후손에게 남겨주고 연구와 전시에 널리 활용되기를 바라는 진주상무사와 진주상공회의소의 숭고한 뜻에 힘입어 열리게 됐다. 

이번 특별전은 1834년부터 1934년까지 진주상무사 100년의 역사를 3부로 나눠 전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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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상무사 : 진주상인 100년의 기록’ 개최
7월 24일까지 국립진주박물관 기획전시실 
기증유물 보부상 관련 문화재 200여점 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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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상무사 현재 모습.
◆1부 “곰방대 물고 산 건너 물 건너” 보부상에서 유래한 진주상인
조선 후기에 장시가 발달함에 따라, 장을 떠돌며 물건을 사고파는 보부상이 생겨났다. 보통 보부상은 가볍고 귀중한 물건을 파는 봇짐장수(보상)와 무거운 물건을 파는 등짐장수(부상)가 있었다. 이들은 지역과 지역 간에 상품을 유통하고, 정보를 널리 퍼뜨리는 역할을 했다. 보부상은 병인양요 때인 1866년 대원군이 각 군현에 상단 조직인 보부청을 설치하면서 전국적인 조직으로 발전했다.  

진주 지역의 보부상도 19세기 중반에는 조직을 갖추고 활동하였다. 1834년 당시 부상의 임원 명단과 1876년 당시 연회 개최 내용이 문서에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시기에 보부상 조직이 활성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1868년경 진주지역의 부상은 진주 뿐만 아니라 사천현·단성현의 장터에도 지부를 둘 정도로 활발히 활동했다.     

▲ 1935년 구인회주단포목상점 건물.
◆2부 “기울어가는 나라, 힘 잃은 상인들” 개항 이후 움츠려든 진주 상인
1876년 개항 이후 서양과 일본의 상품이 조선에 들어오자 국내 경제와 상인들이 피해를 입었다. 정부는 기존의 보부상 조직을 하나로 묶어 1883년 혜상공국을 만들어 지원했다. 이후 상리국·황국협회 등 몇 차례의 조직 개편을 거쳐 1899년에 상무사라는 조직으로 변모했다.

▲ '어과전청금록' 1848년에 작성된 어과전에 관한 기록. 이 책에는 부상 내의 규율을 담은 절목과 역대 임원의 명단이 적혀 있다.
진주 지역에서도 보부상 조직은 여러 차례 변화를 겪었다. 1884년 혜상공국의 경상도 우도소와 일정한 곳에 거주하면서 물건을 파는 시전인 사전이 진주에 설치됐다. 사전은 포전(베 취급)·어과전(물고기·과일 취급)·금전(비단 취급)·지전(종이 취급)으로 구성됐다. 사전의 설치는 활발한 보부상의 활동과 함께 시장의 발전에 따른 정주 상인의 등장에 힘입은 것이다. 1887년에는 상인들은 회의소인 회당을 설립했으며 진주를 비롯한 7개 읍 보부상들은 시장세 질서를 바로잡은 경상우병사 한규설을 기리는 비석을 세우기도 했다. 
진주상인들은 활동 영역을 인근 군으로 넓혀갔다. 특히 부산항을 통해 외국의 물건을 교역하기도 했다. 그러나 1905년경 일본의 경제적 침탈이 본격화되자 조선인 중심의 상인조직인 상무사가 무너졌고 이후 왕성하던 지역 상인조직도 함께 쇠퇴의 길을 걷게 됐다.
 
▲ 상무사건물 건축 당시 의연금 명단 현판.
◆3부 “상인들이여 다시 힘을 모으자” 자발적인 진주 상인 조직의 탄생
일제강점기 진주의 상인조직은 총독부의 통제 속에서 상인의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움직이는 자발적인 조직으로 변했다. 1910년 전후에 결성, 유지되던 상무조합은 1917년경 새로 재건된 상무사 조직에 통합돼 상인의 경제적 이권 보호에 힘썼다. 1935년에 시장세(시장점포요금)를 내리는 운동을 벌인 일이나 1937년 홍수로 무너진 상무사 건물을 다시 지은 일이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1937년에 정상진·문장현·강선호·구인회 등 지역 상공인들이 의연금을 모아 상무사 건물의 재건을 주도했다. 상무사 건물은 지역 상인의 뜻을 모으는 구심점으로서 기능하면서 상인들의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특히 구인회는 해방 이후 지역의 대표적인 상공인으로 성장하여 지역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해방 이후 상무사 조직은 역대 상인들의 제사를 지내는 등 활동을 꾸준히 해 왔다. 

▲ 진주상무사 인장.
최영창 국립진주박물관장은 “이번에 소개되는 진주상무사 유물은 조선후기 보부상 조직에서 출발하여 오늘날 진주상공회의소에 이르는 진주 지역 상업과 상인의 활동을 잘 보여준다. 조선에서 대한제국, 일제강점기를 거쳐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급변하는 시대적 상황에서 진주 지역 상업의 변천 과정과 상공인들의 지역 발전을 위한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이번 특별전을 통해 지난 100년간 진주 상업을 되돌아보고 진주 지역의 산업이 새롭게 도약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고 말했다.  

또한 “기증문화가 꽃피운 이번 특별전의 성과는 단순한 전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학계에 연구 자료로 제공될 것이다. 앞으로 국립진주박물관은 진주상무사 유물 같은 소중한 근현대 문화유산을 발굴하는 한편 지역사회에 이를 소개하는 다양한 전시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김상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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