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좋고, ‘나’도 좋은 길로 나아가자
'너’도 좋고, ‘나’도 좋은 길로 나아가자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05.31 18:51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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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산스님 금인산 여래암 주지
 

헛된 욕심을 부려 부정한 방법으로 재물을 탐하면 만 가지 재앙이 온다. 피땀과 눈물 배인 돈 아니면 받지 마라. 그런 돈에는 마약성분이 들어있어 결국 나를 해치게 된다.


바르고 정직하게 살면 거센 바람이 불어와도 끄떡없고, 어떤 악마도 그를 쓰러뜨리지 못한다. 혼자 있을 때도 무대 위에 선 것처럼 조심하며 살아가야 탈이 없다.

내 마음의 저변까지 남들이다 보고 있더라도 진실하게만 살아가면 전혀 두려울 것이 없다.

지금은 외롭고 힘들더라도 그 고비만 잘 넘기고 나면 지금의경험이 바탕이 되어 훨씬 더 지혜롭고 강한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다. 그러니 오늘의 고생을 달게 받아들이자.

고생해본 사람이라야 남의 상처를 보듬어줄 수 있고,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사람이라야 남들의 부족함이나 실수도 이해하고 포용해 줄 수가 있다. 동물들은 본능으로 살아가지만 사람은 본능외의 지성으로 살아간다. 본능이 육체의 지혜라면 지성은 정신의 지혜이다.

짐승들은 본능인 육체의 지혜로만 살아가기에 거짓이나 허위가 없다. 인간은 지성이라는 정신의 지혜를 가지고 살아가기에 거짓과 허위가 많다. 그래서 남을 속이는 동시에 자기 스스로도 속인다. 우리가 옳고 착한 일만 엄격히 선택하며 살아간 것은 아니다.

때로는 불의와 적당히 타협하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이중적 습관도 지니고 있다.

이런 습관들을 개선해야만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도 더욱 성숙해질 수 있다.

‘나’ 말고는 모두가 남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내’가 남이다. 이점을 서로가 인정하면 다툼이나 갈등도 없게 된다. 서로를 인정해주며 ‘너’도 좋고, ‘나’도 좋은 길로 나아가자.

대인관계에서 오는 정신적인 문제는 대부분 분노와 적개심과 깊은 관계가 있다.

분노를 잘못 처리하면 정신적 장애를 초래한다. 서로가 상대를 인정하고 이해하고 화합하면 정신적 안정과 상생의 길이 열린다. 나는 얼마나 약속과 양심을 잘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가 냉철하게 돌아보자. 강한 사람은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지만, 약한 사람은 자신의 약점을 감춘다.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어 개선해 나가자. 진실을 등지고 거짓과 불의와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사고와 행동을 바꾸어 나가야 한다. 사람들은 이렇게 살면 더 나쁜 결과가 온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런 사고와 행동을 쉽게 바꾸지 못한다.

매사에 엄살 부리는 습관도 추방해야할 장애물이다. ‘거년빈 유추무지(去年貧 有錐無地)’라, 지난해에는 가난하여 송곳하나 꽂을 자리가 없더니, ‘금년빈 무추무지(今年貧 無錐無地)’라, 금년의 가난은 꽂을 송곳마저 없다며 울상이다. 아직 살아있으면 희망이 있는 데도 말이다.

옛날, 어느 섬에 개구리와 거북이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용왕님께서 “꼬리달린 놈은 모조리 처벌하라” 명령이 떨어졌다. 꼬리달린 거북이는 슬피 울고 또 울었다.

그런데 옆에 있던 개구리도 목 놓아 팔짝팔짝 뛰며 더 크게 울고 있었다. 기가 막힌 거북이가 “야, 너는 꼬리도 없으면서 왜 우는 거니?” “나는 지금은 꼬리가 없지만 과거올챙이 시절에는 꼬리가 있었으니 무사할 것 같지 않아서 우는 거야.” 하고는 또 엉엉 울더라는 이야기가 있다. 과거에 오줌 싸게 아닌 사람 나와 보라. 과거는 잊고, 미래지향적이 되어보자.

미래는 두려움이 없을 때 길이 열린다. 늘 다니던 길도 깜깜한 밤이 되어 앞이 보이지 않으면 두렵다. 그러나 해가 뜨고 밝아지면 두려움도 사라진다. 우리의 인생길도 미래가 암담하고 앞이 보이지 않으면 불안하고 두렵지만 희망의 서광이 비추면 두려움이 사라진다.

미래에 대한 불안해소는 자신의 의식을 바꾸어 희망을 갖는데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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