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 : 2017-06-26 04:03:20
경남도민신문
뉴스 지역 시민기자 기획 오피니언 커뮤니티 LIFE 알림 게시판 포토
오피니언시론
한국인과 밥의 문화최진상/경남과학기술대학교 식품과학부 교수
경남도민신문  |  gndm1000@daum.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6.06.12  18:41:12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1995년 겨울 몇 일 단식을 경험한 이후 필자는 아침을 먹지 않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까지 한잔의 물이 아침 식사의 전부인 셈이다. 가끔씩은 아내가 토마토 주스를 갈아서 건네주면 입이 행복해진다. 우리나라 음식의 대표는 밥인데 최근 쌀의 소비량이 현격하게 줄고 있으며, 바쁜 생활상의 변화와 밀가루의 다양한 변신으로 인하여 우리나라 밥의 문화를 변화시키고 있다. 오늘은 한국의 전통 주식 밥의 문화를 수학사의 ‘세계식생활문화’를 통하여 상식을 넓혀 봅시다.

곡물은 5000여 년 전부터 우리민족의 주식으로 정착되었다. 신석기시대 농경이 시작되면서 조, 피, 수수 등의 잡곡이 그들이다. BC 2000여 년 전 벼가 재배되기 시작하면서 쌀을 중심으로 하는 밥은 오늘까지 주식의 자리를 차지하는 본음식이 되었다.

한국인에게 밥은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고 ‘밥이 보약이다’라는 생각에 밥을 소중하게 여겨 한국음식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위치에 있다. 우리민족이 즐겨 먹은 밥에는 여러 종류의 밥이 있다. 도정에 따라 현미, 칠분도미, 백미 등이 있으며, 이런 쌀에다 다양한 잡곡을 넣어 보리밥, 조밥, 수수밥 등과 같은 잡곡밥을 짓는다. 계절에 따라 여름에는 햇보리밥, 초가을에는 강낭콩밥, 겨울에는 팥밥 등을 먹었다. 그밖에도 콩나물밥, 완두콩밥, 감자밥, 무밥, 굴밥 등이 있다.

‘옹희잡지’(1800년대 초)에는 찹쌀이나 멥쌀에 팥, 밤, 대추 등을 섞어 시루에다 쪄낸 밥을 혼돈반방(渾沌飯方)이라 하였으며, 이것에 기름과 꿀을 섞으면 약밥이 된다.

쌀밥은 다른 나라에서도 주식으로 하고 있으나 우리는 누룽지와 숭늉의 맛도 즐긴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바닥이 약간 눌어붙도록 밥을 짓는데 일본에는 숭늉이 없다. 이것은 가옥 구조의 차이에서 기인하는데 우리의 전통가옥은 온돌, 부뚜막, 아궁이가 일체형으로 되어 있고 솥은 고정식 가마솥이어서 씻기가 불편하였다. 따라서 누룽지에 물을 붓고 끓이면 숭늉도 얻어지고 자연스레 솥을 씻는 방법도 되었던 것이다. 식후에 마시는 숭늉은 우리만이 맛볼 수 있는 정겨운 미각이다.

우리 민족이 즐겨 먹은 밥 가운데 비빔밥이 있다. 비빔밥은 1800년대 말엽의 ‘시의전서’(是議全書)에 등장하는데 이를 골동반(汨董飯)으로 표기하고 있다. 汨은 ‘어지러울’골, 董은 ‘비빔밥’동이다. 골동은 여러 가지 물건을 한데 섞는 것을 말한다.

옛날 궁중에서는 골동반을 점심 또는 종친이 입궐하였을 때 먹었으며, 일반적으로 섣달 그믐날에 먹었다. 비빔밥은 갖가지 식재료가 한데 모여 오색과 오미의 조화를 이루는 대표적인 밥이다. 각 지방의 특색에 따라 비빔밥의 이름도 각기 다르게 불렀다.

죽은 곡식의 낟알이나 가루에 물을 붓고 오래 쑤어서 곡식의 알이 연하게 퍼지고 녹말이 충분히 호화되어 소화되기 쉬운 유동식이다. 농경문화권인 우리나라에서는 죽이 밥보다 앞선 조리법으로 매우 다양하게 발달되어 왔다. 주식이나 별미, 보양식, 환자식, 심지어는 구황식으로도 이용되었다. 또한 궁중에서는 임금이 탕약을 드시지 않는 날 초조반으로 올렸으며, 첫날밤을 보낸 신랑 신부에게 대접하기도 하였다.

재료에 따라 흰죽, 두태죽, 장국죽, 어패류죽 등이 있으며, 종류도 다양하다. 궁중이나 상류층에서는 타락죽이라는 죽을 먹었다. 타락은 원래 말린 우유를 뜻하는데 귀한 보양식으로 궁중에서는 동지절식으로 공신들에게 하사하여 약으로 썼다고 한다. 이렇듯 우리의 죽은 매우 발달하였기에 미음, 응이, 암죽 등 다양하게 분화되어 독특한 명칭이 붙게 되었다.

미음은 쌀이나 좁쌀에 물을 넉넉히 붓고 푹 쑤어 체에 밭인 걸쭉한 음식으로 죽의 한 변형이다. ‘규합총서’(1809)에는 해삼, 홍합, 소고기, 찹쌀로 만든 삼합(三合)미음이 설명되어 있다.

응이(의이)는 본디 율무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조선시대에는 녹두, 수수, 칡 등 어떤 곡물이든지 갈아서 나온 녹말로 쑨 죽이라면 모두 응이라고 하였다. 죽보다는 유동성이 있어 그대로 마실 수 있을 형태를 가졌다.

그밖에 곡식의 마른 가루에 물을 넣어 끓인 암죽은 어린이, 환자, 노인 특히 이유식으로도 사용하여 우유를 대신한 훌륭한 음식이기도 하다.

< 저작권자 © 경남도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경남도민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회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ㆍ고충처리인
경남 진주시 동진로 143   |  대표전화 : 055)757-1000  |  팩스 : 055)763-2200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인태
Copyright 2011 경남도민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gndomin.com
본사이트에 게재된 모든기사의 판권은 본사가 소유하며 발행인의 사전허가 없이는 무단전재 및 복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