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으면 절대로 안 될 12월의 자취
잊으면 절대로 안 될 12월의 자취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12.08 07:3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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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주/국학원 원장
한민족 역사문화공원 원장
병자호란(丙子胡亂)은 1636년 12월 초부터 1637년 1월 사이에 벌어졌다. 청태종(淸太宗) 홍타이지(1592~ 1643)는 과감, 치밀하게 명(明)과의 건곤일척을 준비하면서 미리 후환의 싹을 자르려고 조선을 침략한 것이 병자호란의 실체이다.

조선의 임금과 조정 대신들은 명(明)의 임진왜란 조선 파병으로 재조지은(再造之恩)을 결코 잊지 않았다. 그들은 화석화된 소중화의 명분에 사로 잡혀있었다. 동족일 수 있는 청(淸)은 줄곧 ’오랑캐‘라고 경멸하는 반면, 타민족인 명(明)에게는 철저하게 의지하면서 근거 없는 낙관론으로 일관한다. 나라의 지도자들이 칼날 위의 현실 앞에 눈을 감았으니 불과 두 달 만에 조선은 울음소리와 피 자욱이 낭자한 참극의 땅이 되는 것은 당연지사! 결국 인조께서는 청태종 홍타이지에게 이마가 터지도록 절을 하고 눈밭에 꿇어 앉아 항복을 청한다.

결국 청나라를 임금의 나라로 섬길 것, 명나라와의 관계를 끊을 것 등 6개항을 조건으로 항복을 받아내고 청은 물러간다. 동시에 50만~60만 명의 부녀자와 화살 받이 남자들이 청과 몽골로 끌려갔고 몇 년 뒤 모진 고생 끝에 목숨을 걸고 탈출하거나 속량된 조선 여인들은 목을 매거나 비참한 상태로 전락한다.

병자호란은 조선 조정의 밖으로는 거듭되는 외교적 실책과 안으로는 민족의 정체성을 잃은 실정과 군사력 약화의 대표적인 내우외환(內憂外患)이었다. 명(明)이 기울고 청(淸)이 일어서던 국제정세에 대한 판단 착오로 불러들인 정권 실세들의 부패와 무능에 기인한다. 결코 되풀이 될 수 없는 인재요 더 할 수 없는 비극이다. 1649년 인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효종은 삼전도의 치욕을 씻기 위해 조심스럽게 북벌을 추진하나 뜻을 이루지 못한다. 명에서 청으로 교체된 사대(事大)가 100년 전 까지 지속되더니 결국 나라를 일본에게 빼앗기게 된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서 1598년 12월 16일(당년 음력, 11월 19일)추운 남해 관음포 앞바다에서 순국하시니 생명과 맞바꾸어 나라를 지켜내신지 불과 40년이 안되어 조선은 어찌 호란의 비극을 또다시 불러들였는가! 또, 어찌 이토록 지금의 우리 국제 정세와 국내 정치 현실과 꼭 닮았는지 모골이 송연하다. 정녕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말인가.

이순신 장군의 순국 다음 해 1599년, 통영 백성들에 의하여 조선 땅에서 제일 먼저 장군을 기리는 착량묘(鑿粱廟)가 건립되고 현재까지도 통영 충렬사(박형균 이사장)의 주도로 매년 12월 16일 택하여 기신제(忌辰祭)를 올림으로써 정성을 다하여 그 숭고한 뜻을 기린다.

장군께서 순국하신지 304년 뒤인 1902년 12월 16일 유관순 열사가 이 땅에서 태어나고 나라를 위한 짧은 생을 마치니, 이 또한 거두고 내는 하늘의 뜻이다. 상해의 홍구 공원에서 일본의 천장절과 전승기념 축하식 단상에 폭탄을 투척하여 의거를 벌인 윤봉길 의사(1908 ~1932) 또한 12월 19일 25세의 나이로 순국하신다.

1910년 12월 24일 안동 땅의 백하 김대락(白下 金大洛 1845-1914년)이 66세의 노구와 식솔을 이끌고 단군의 개국지인 서간도를 향하니 영영 고향과 조국을 떠난다. 그의 막내 여동생 또한 ‘대한의 어머니’라 칭해 마땅한 김락(金洛 1862~1929, 의병장 향산 이만도의 맏며느리)으로 예안의 3.1만세 운동을 주도한다. 결국 일본 경찰의 모진 고문으로 두 눈을 잃고 11년 동안 고초를 겪다가 사망한다. 고향을 떠난 60여 명의 식솔들은 이듬해 4월 서간도 유하현 삼원포에 도착하니 무서운 간도 땅의 북풍한설을 뚫고 나온 장장 4개월여에 걸친 유랑이다. 그 천신만고를 어찌 필설로 다할 수 있을까. 이후 이동영, 이회영 등 서울 출신 독립운동가들과 한인 자치단체인 경학사를 조직하고 ‘신흥강습소(신흥 무관학교의 전신)’를 열어 수많은 광복군 동량들을 길러 낸다.

12월에 우리는 사상최초로 무역 1조 달러의 시대를 열었고 한 해의 끝자락에서 바쁜 나날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내 생명의 바닥에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될 ‘분명한 사실들’이 있다. 위에 열거된 일들은 지금, 한민족으로 태어나 여기, 지구에 온 이유를 바로 알고 세계를 경영할 우리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될, 뼈와 피에 새겨진 12월의 ‘나의 생명 기록’ 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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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2011-12-22 11:53:40
12월에 충무공 이순신의 인간사랑 나라사랑의 정신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