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이후, 지금이 희망이다
6.25 이후, 지금이 희망이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06.26 18:06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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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주/국학원 상임고문ㆍ한민족 역사문화공원 공원장
 

올해는 통한의 6.25 동란발발로부터 꼭 66년이 되는 해이다. 단언컨대 필자의 세대가 6.25를 겪고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일 것이다. 기분 좋게 흔들리는 가운데 온통 하얀 빛 속에 갇힌 듯 느낌이 필자의 생애의 첫 기억이다. 나중에 어머님께 왜 그런 모습이 자꾸 떠오르는지 여쭈어 보았더니, 흰 보자기를 덮어쓴 채 어머니의 등에 업혀 남쪽으로 겨울피난을 가는 중이었기에 고착 된 기억이었다.


고향으로 돌아와 겨우 걷게 되었을 때, 다 타버린 길고 긴 철교를 어머니의 손을 잡고 건너던 기억이 있다. 밑으로 강물이 흐르는 까마득히 높은 다리위에서 침목을 한 칸씩 건널 때마다 어머니께서 잘한다고 칭찬을 해주셨다. 지금이사 그리 길지도 않은 다리이건만 당시는 세상에서 제일 긴 다리로 각인 되어 있다. 억수 같이 퍼붓는 빗속에서 아버님이 전근하기 위해 얻어 타고 가던 군용 짚 차가 미끄러져 그 비를 다 맞으며 온 식구가 우두커니 노배기 하던 기억도 있다.

북진하던 미군들을 처음 보았다. 특히 검은 피부의 어마어마하게 큰 미군이 트리궤터 차에 드럼통을 번쩍 번쩍 들어 올려 싣던 장면을 보고 ‘누구든 절대로 저 사람들을 이길 수는 없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내가 처음 배운 영어는 “헬로, 기브 미 쪼꼬렛”이었다. 울면서 예방주사를 맞다가 미군을 태운 군용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뛰어나가며 외친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록색의 큰 차는 신작로에 뿌연 먼지를 휘날리며 쏜살같이 지나가고, 의사와 간호사, 어머니는 한참을 웃으셨다. 학교에 가면 오크통에 가득한 분유를 넣고 멀건 우유죽을 한 바가지씩 주었고, 가루는 쪄서 과자처럼 간식으로 먹었었다. 얼마나 딱딱한지 흔들거리던 이가 빠졌다. 그 분유는 미국에서 보내온 가축용 사료였다.

방학이 끝나면 어떤 친구는 손가락이, 또 어떤 친구는 발가락이 잘라진 채 등교하였다. 쌀과 엿으로 바꾸어 먹으려고 지천으로 널려있던 포탄의 장약을 분해하기 위해 두드리다가 폭발사고를 당한 것이다. 누님들이 친정에 왔다가 돌아가실 때면 왜 언제나 아버지는 돌아앉으셔서 헛기침을 하시고 어머니는 연신 손수건으로 눈을 찍어 내시는지 그때는 몰랐다. 막내인 필자보다 17세가 더 많은 큰 형님과 더 연상인 큰 매형이 전쟁 중에 행방이 묘연해졌고 당시는 누구나 헤어지면 다시 만날 기약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부모님은 두 분을 못 만나고 돌아 가셨다. 우리 집안만의 일이 아니라 민족적이고 세계적인 비극이 아닐 수 없다.
10여 년 전, 다행히 이산가족 상봉 프로젝트에서 이북에 살아 계신 큰 형님을 만날 수가 있었다. 이별하고 60년이 지난 터라 형님이나 필자나 서로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어려서 같이 자란 큰 누님과 사촌 형님이 동행하셨는데 그분들도 알아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걱정하셨다. 금강산 온정 각에서 이루어진 상봉 식에는 버스에서 내리는 북녘 가족들은 아뿔사! 모두가 같은 모자, 같은 양복, 같은 넥타이, 똑 같은 모양과 색의 구두를 신고 계셨고 피부색도 모두 하나같이 검붉었다. 더욱 낙담이 되었으나 걱정도 잠시, 형님이 아니라 돌아가신 아버님이 걸어 들어오고 계셨다. 나는 곧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형님, 제가 막내 동생입니다.”라고 눈물로 절을 올릴 수 있었다. 대한민국 전역이 ‘국제시장’이었다.

그로부터 북한은 새로운 지도자가 들어섰고, 막무가내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세계가 제제를 자초하고 있다. 악순환은 계속 되면서 현재 대한민국과 한반도의 상황이 녹록치도 않거니와 이제 핏줄을 그냥 알아 볼 수 있는 세대의 끝자락이 엇갈려 흘러가고 있다.

태극기 중앙의 붉은색과 푸른색의 둥근 원을 양의(兩儀)라고 한다. 하늘의 불의 기운, 곧 양기와 땅위의 물의 기운, 곧 음기가 조화롭게 섞여 만변하는 작용으로 뭇 생명을 살려가는 모양을 함축하는 최고의 철학적인 도형이다. 양의를 우리말로는 ‘엇’이라고 한다. 같은듯하면서 다르고 다른듯하면서 같은 꼴이다. 그래서 ‘엇비슷하다’, ‘엇나갔다’라는 말이 있다. 지금, 우리는 더욱 큰 사명감으로 민족통일 인류평화를 이루는 거룩한 나라가 되도록 새로운 도약을 기필코 이루어 내야 한다.

우리에게는 이미 오래전부터 선현들께서 천명하신 ‘엇나갈 수 없는 홍익인간’의 철학이 있고 전쟁의 폐허에서 세계 10위권을 넘나드는 ‘경제부흥의 경험’도 있다. 모든 준비가 다 되어 있다. ‘통일대박’은 이제 대통령만의 수사가 아니라 한민족 모두의 꿈과 희망이다. 세계의 마지막 분단국인 한민족의 평화통일은 인류의 지구평화와 같은 말이다. 국가흥망도, 천하흥망도 필부유책(國家興亡 天下興亡 匹夫有責)이다. 모두 6.25이 상처를 딛고 떨쳐 일어나 민족통일과 지구평화의 꿈을 반드시 이루어내야만 한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할 것이며, 내가 아니면 누가 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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