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주는 예상치 못한 행복
여행이 주는 예상치 못한 행복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12.08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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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인숙/진주보건대학교 관광계열 교수
흔히 여행을 인생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철저히 계획을 세워도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계획 외의 일이 발생하기 때문일 것이다. 해외여행의 경우 패키지상품으로 여행을 가면 대체로 여행일정표에 있는 여정을 다닌다. 하지만 미국대륙과 같이 장거리로 버스를 타고 다닐 때에는 차량고장 등의 이유로 시간이 지체될 수 있고 지체된 만큼 다음 일정이 밀리게 된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으면 가이드의 안내로 작은 재미를 주는 여러 여행지들을 둘러볼 수 있으나 예기치 않은 상황으로 인해 일정이 밀리면 꼭 중요한 몇 가지만을 보기 위해 아주 바쁜 여행을 해야 한다.

미국에서 처음 유학생활을 하고 돌아오면서 사용하던 자동차를 판매한 돈으로 서부와 동부 패키지여행을 하게 되었다. 한정된 시간에 많은 것을 볼 수 있었지만 자신이 스스로 찾아다니는 번거로움이 없으니 긴장감은 덜했던 여행이었다. 그래도 여러 해에 걸쳐 볼 수 있었던 장소를 단기간에 다녀온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두 번 째 미국생활을 시작했을 때에는 심리적인 여유도 생겼고, 주변에 여행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단기간의 계획으로 배낭여행을 다닐 기회가 자주 만들어졌다. 트렁크에 전기밥솥과 밑반찬을 싸들고 운전을 교대로 해가며 목적지까지 계속 진행을 하는 것이었다. 목적지만 있지 도중에 무엇을 할지는 그 때 그 때마다 결정되었다. 지금은 설치되었는지 모르겠으나 몇 해 전만 해도 자동차에 내비게이션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지도만 하나 들고 여행을 다녔다. 그래서 여행가기 전 AAA(미국자동차협회, 트리플 에이라고 부름)에 가입한 친구에게 지도를 구해오는 것이 필수사항이었다.

한번은 포레스트 검프 영화를 보고 영화 찍은 배경을 보자는 의견이 모아져서 미국 조지아주의 사바나(Savannah)라는 도시를 다녀온 적이 있다. 우리가 살았던 곳에서 장장 세 개의 주를 넘어야 그 곳에 도착할 수 있었으니 운전해서 가는 시간만 해도 거의 편도 20시간. 포레스트 검프가 앉았던 그 의자는 사바나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었고, 그 주변에 있는 광활한 플랜테이션들을 둘러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영화보다 못하다는 인상만 안고 다시 20시간의 운전을 시작하며 집으로 돌아오다가 길을 잃었다.

어디론가 길은 나 있는데 오솔길로 접어들어 되돌아 나올 수가 없었다. 한참을 숲길로 가니 겁도 났지만 어찌할 도리를 몰라 그냥 계속 운전해나갔다. 얼마를 갔는지. 갑자기 시야가 뻥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 바로 눈앞에 대서양이 펼쳐진 것이었다. 고운 모래사장에 파도에 쓸려 넘어진 고목들이 누워있고, 그 고목들 사이로 뿌리를 내린 또 다른 나무들이 얽혀 장관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나무들은 삶과 죽음의 양면이 교차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또 눈앞엔 끝이 보이지 않는 대양의 광활함이 숨을 멎게 하였다. 사진으로도 그 감동을 도저히 담아낼 수가 없었다. 그냥 마음에 담는 수밖에.

동부 연안 끝으로 갔으니 이제 되돌아 나오는 일만 남았다. 자동차를 운전하여 되돌아오니 아까는 보이지 않던 우리가 가야했던 그 길이 보이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체되어 밤 시간이 가까웠기 때문에 예정에도 없이 그 곳에서 하루 더 숙박하였다. 그러나 숙소를 찾아 이러 저리 돌아다니는 일이 하나도 피곤하지 않고 그냥 무엇인가 마음속에 꽉 찬 기분이 들었다. 산타할아버지로부터 선물을 받으면 그런 기분일까.

10년 가까이 된 지금도 선물처럼 방문했던 그 장면은 전혀 잊히지 않고 남아있다. 오히려 머릿속에서 더 생생한 상상으로 존재한다. 운전해서 다시 찾아갈 수는 없겠지만 동부 연안 어디엔가 길을 잃어 방문했던 그 곳은 세계 어느 명소보다 더 아름다운 장소였다.

이와 같이 여행에서 가지는 체험은 계획에서 벗어나더라도 예기치 않은 행복과 긍정적이고 겸허한 마음을 가지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그런 체험이 있는 여행은 잊지 못할 추억을 진하게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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