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에 대하여
잘못에 대하여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07.06 18:37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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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
 

좀 뜬금없을지는 몰라도 ‘잘못’이라는 것을 생각해본다. 어쩌면 요즘 우리 주변에서 이 ‘잘못’이라는 것을 저지르는 사람이 너무 많고, 그럼에도 그것을 인정하는 사람이, 그것을 고치려는 사람이 너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세대가 어렸을 때는, 부모들이 뭔가 잘못한 아이를 꾸중하면서 “잘 했어 잘못했어?” 하고 다그치고는 했다. 그러면 아이는 눈물 콧물 다 흘리면서 “잘못했어요, 다신 안 그럴게요...” 하고 싹싹 빌고는 했다. 요즘도 그런 장면 내지 풍경이 어딘가에 있는지 잘 모르겠다. 적어도 공적인 장에서 근래 이런 경우가 과연 있었는지 생각해보면 (형식적인 쇼를 제외하고는) 별로 떠오르는 것이 없다.


{논어}에 보면 공자가 잘못이라는 이 말을 여러 번 입에 담는다. 1-8과 9-24에는 “過則勿憚改”(잘못을 하면 고치기를 꺼리지 마라.)라는 말이 보이고, 4-7에는 “人之過也,各於其黨.觀過,斯知仁矣”(사람의 잘못은 각자의 그 옳음[자기가 옳음]에서다. [이런] 잘못을 보는 것, 이는 인을 앎이다.)라는 말이, 5-7에는 “已矣乎! 吾未見能見其過而內自訟者也”(끝났구나! 나는 그 잘못을 볼 줄 알고 안으로 스스로 탓하는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다.)라는 말이, 14-29에는 “君子恥其言而過其行”(군자는 그 말을 부끄러워하고 그 행을 잘못처럼 여긴다.)라는 말이, 15-30에는 “過而不改,是謂過矣”(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을 일러 잘못이라 한다.)라는 말이 보인다. 6-3에는 아끼던 제자 안회를 평하면서 “...好學,不遷怒,不貳過...”(배우기를 좋아했고, 노여움을 옮기지 않았고, 잘못을 두 번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것(過)이 공자의 큰 관심사였던 셈이다.

공자 같은 매력적인 철학자가 이 말을 입에 담는다면 그건 우연이 아니다. 그만큼 이것이 중요한 철학적 주제가 됨을 방증하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그의 이 말들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공자도 아마 동의하겠지만 인간에게 잘못이란 불가피한 숙명과도 같다. 그의 말투에도 뭔가 잘못이라는 것이 인간의 당연한 전제로 깔려 있는 듯한 그런 뉘앙스가 있다. 어쩌면 중학교 때 영어시간에 배운 저 영어 격언 “to err is human to forgive divine”(잘못하는 것은 인간의 일이고 용서하는 것은 신의 일이다)라는 것도 그런 맥락일 것이다. 그래, 그럴 수 있다. 인간이니까 우리는 뭔가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아니 실제로 저지르고 있다. 작은 것에서 큰 것에 이르기까지, 예컨대 누군가의 부탁을 깜빡하는 그런 사소한 잘못에서부터 사람을 죽이거나 전쟁을 일으키는 그런 엄청난 잘못에 이르기까지, 한도 끝도 없다. 그 최소와 최대 사이에 얼마나 많고 다양한 잘못들을 우리 인간은 저지르고 있는가! (요즘은 자연, 환경, 지구, 미래를 망치는 그런 종류의 잘못도 있고,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그런 종류의 잘못도 있다.)

잘못의 본질은, 그것이 크든 작든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고 피해를 주는 것이다. 그런 이상 잘못은 또한 본질적으로 시정되어야 하는 것, 고쳐져야 하는 것이다. 재미삼아 말하자면 ‘비정상의 정상지향성?’ 그런 것이 그 근본에 내재하는 것이다. 그러니 잘못은 결코 되풀이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우리가 저지르는 그 무수한 잘못들을 우리는 잘못으로 인식하고 있는가? 그것을 고치고자 하는,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자세가 갖추어져 있는가? 돌아보고 인식하고 인정하고 고치려는,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그런 태도가 사람에 의해 사람에게 가르쳐지고 있는가? ... 이런 물음에 우리는 쉬이 입을 열 수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정말 자기의 잘못을 잘 알지 못하고 인정하지 않고 따라서 고치려 하지도 않고 따라서 두 번 세 번 되풀이 같은 잘못을 저지른다. 오죽했으면 공자는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 그것이 잘못이다’라고까지 말했겠는가. 그렇게 잘못을 알지 못하고 인정하지 않고 사과도 하지 않고 고치려고도 하지 않고 거듭 되풀이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결국 자기라는 것에, 자기가 옳다는 것에, 고집하기 때문이요(各於其黨), 잘못을 남에게 돌려 남 탓을 하는 것이다. 자기를 돌아보는 일이 그토록 어려운 일인 것이다. 그래서 공자는 “나는 아직 그 잘못을 볼 줄 알고 안으로 스스로 탓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며 “끝났구나!” 하고 탄식을 하기도 했던 것이다. 5-7의 이 ‘能見其過’는 4-7의 ‘觀過’와도 통하는 것이다. 공자는 ‘관과(잘못을 보는 것)’를 ‘지인(인을 아는 것)’의 경지로까지 평가한다. 남 탓을 하지 않고 자신의 잘못을 본다는 것(자기만이 옳음을 고집하지 않는 것)은, 그 태도 자체가 이미 ‘인을 아는 것’(知仁)이다.(‘仁’에 대한 공자의 드문 설명 중 ‘克己復禮’와 ‘己所不欲 勿施於人’과 ‘愛人’과 ‘與人忠’이 있음을 상기해 보라.

‘인’의 핵심은 ‘자기’를 고집하지 않고 ‘남’을 존중하고 배려함이다.) ‘문제가 있을 때 안으로 눈을 돌려 자기 자신을 탓하는 것’, 남에 대한 나의 좌표 설정이 그렇게 되어 있는 사람은 이미 어진 사람인 것이다.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其行)을 잘못인양 두려워하는 것(過)’, 자신에 대해 그런 자세를 취하는 사람은 이미 군자인 것이다. 공자는 정말이지 인간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지닌 철학자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뭔가 잘못을 저지른 수많은 사람들을 알고 있다. 그런데 그 중 누구에게서도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잘못했다’ ‘미안하다’ ‘다시는 그러지 않으마’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몇 번이나 나라를 짓밟은 일본에게서도 그런 말을 우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멍청하게 잘못해서 나라를 짓밟힌 위정자들에게서도 그런 자기 탓은 별로 들어보지 못했다.(유성룡의 {징비록}은 그런 자기 탓일까?) 심지어 살인 같은 잘못을 저지른 자들도 마찬가지다.

‘不貳過’했던 안연과는 달리, 인간세상의 도처에서 잘못은 거듭 되풀이되고 있다. ‘過而不改 是謂過矣’라고 가르친 공자의 뜻과는 달리, 지금도 사람들은 잘못을 고치려 하지 않는다. 오죽하면 저 예수 그리스도는 “회개하라!” 라는 말로 그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했겠는가. 인간들은 좀처럼 그 잘못을 고치려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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