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피제도(相避制度)
상피제도(相避制度)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07.11 18:46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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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조선 19대 숙종임금이 등극(1674)하고 서인 세력이 집권한 이후 가장 촉망받고 빛나는 관리는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이었는데 그가 37세 때인 1687년(숙종13년) 1월 19일 대사간(大司諫)에 제수된다. 그러나 이 때 아버지 김수항(金壽恒)이 묘당(廟堂:의정부 곧 행정부)대신, 곧 영의정에 있었다. 이 때 김창협은 대사간이란 자리를 사직하겠다고 나선다. 즉 대사간이란 자리는 의정부의 일을 견제하고 비판하는 곳인데 어떻게 아버지가 영의정으로 있는 의정부를 견제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왕은 김창협이 올린 사직서를 보고 뜻을 받아들여 약 열흘 후에 그를 성균관 대사성(大司成)으로 전보시켜 준다. 이때에 올린 글이 명문이라서 소개하고자 한다.


삼가 아룁니다. 신(臣)은 용렬한 자질과 못난 재주로 후한 성은을 받고 시운이 좋은 때를 만나 벼슬한 지 4∼5년 사이에 갑자기 하대부(下大夫:정3품 당하관)의 반열에 올랐으나 대열을 따라다니기만 할 뿐 조금도 국가에 도움을 주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내심 부끄러운 나머지 영광을 누리는 것을 두렵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이번에 또 새로 대사간에 임명되었으니 놀랍고 황송한 마음 더욱 심합니다. 어리석은 신은 직무를 맡아 관직에 있는 문제에 있어 직책이 높거나 낮거나, 한가하거나 복잡하거나 간에 어느 한 군데도 걸맞은 것이 없습니다. 더구나 대각(臺閣:사간원)의 임무에 있어서는 스스로 헤아려 보건대 남들만 못한 신의 풍채와 기개로는 아무리 진부하고 무딘 자질을 가다듬어 바른말을 하여 직책을 저버리지 않으려 해도 결코 그럴 수 없음을 잘 압니다. 더구나 한 원(院:부처)의 장관은 지위와 명망이 특별하고 책임이 더욱 중한데 신 같은 자에게 얼굴을 쳐들고 외람되이 그 자리를 차지하여 논의를 주관하게 한다면 어찌 조정에 크나큰 수치가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신이 삼가 생각건대 나라에서 대각(사간원)을 설치한 것은 사실 묘당(행정부)과 서로 견제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묘당에서 옳다 하는 일을 대각에서는 그르다고 하고 묘당에서 어질다 하는 사람을 대각에서는 그렇지 않다 하는 경우에는 피차간에 의견을 달리하는 가운데 극심한 마찰을 빚는 일이 흔히 있습니다. 또한 묘당에서 과실이 있을 경우에는 오직 대각에서만 그것을 지적하고 탄핵할 수 있으니, 묘당의 대신 곧 영의정의 자제를 묘당과 서로 견제하는 자리에 있게 하여 거리낌 없이 가부를 논의하는 일을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비단 이치상 옳지 않을 뿐만 아니라 행해질 수도 없는 일입니다. 신의 소견은 이와 같습니다. 그래서 처음 벼슬에 나왔을 때에 사헌부 관원이 되자 혐의를 피하기 위해 사직을 요청하면서 이러한 사리를 구체적으로 진술하였으나 조정에서는 그런 사정을 깊이 살피지 않고 그 뒤에 다시 여러 차례 대각의 관직에 제수하였습니다. 이에 신도 처음에 견해를 고수하지 못하고 간간이 한두 번 공무를 수행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허수아비처럼 묵묵히 입 다물고 있었을 뿐입니다.…중략

진심으로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특별히 살피시어 속히 신의 채직을 윤허하시기를 두려운 심정으로 간절히 기원해 마지않습니다.

현재의 우리나라는 정부의 잘잘못을 비판하고 견제하는 역할은 검찰이나 감사원 또는 언론이 나눠서 한다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견제를 제대로 못할까봐 자리를 피한 이러한 사례는 관례화나 제도화되어 왔다. ‘상피(相避)’라는 것이 그것이다. 즉 일정 범위 내의 친족 간에는 같은 부서나 종속관계에 해당하는 부서에 나아가지 않도록 하였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선생이 단양군수로 있을 때에 그의 형인 온계(溫溪) 이해(李瀣)가 충청감사로 오자 퇴계는 스스로 자리를 옮겨줄 것을 청원해서 경상도 풍기로 옮겨갔다. 이처럼 견제가 필요한 자리에는 정말로 제대로 견제하고 비판할 사람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 옛 사람들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교훈이다. 진정으로 정치를 성공하려면 비판을 하는 자리에 대해서는 가까운 사람보다도 더 객관적인 사람을 임명하는 것이 정치의 성공의 지름길임을 우리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국회의원이라 카는 사람들이 가족이나 친인척을 보좌관으로 특별채용을 하고도 부끄러움을 모르고 그 자리에 버티고 앉아 있다는 사실이 개탄스럽기만 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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