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약국
우리약국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07.12 19:14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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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우리약국은 우리 동네의 약국이다. 팔순을 넘겨신 약사 할머니가 할아버지와 함께 운영하는 약국이다. 우리 동네는 작은 동네이다. 몇 달만 살아도 동네의 사정을 빠삭하게 괴게 된다. 이 곳에서 약국을 운영한지 벌써 30년이 넘었다. 말대로 두 분은 우리 동네의 어른이시다. 그러니 동네의 소소한 일들은 다 알게 된다. 특히 약국을 운영하니까 누구의 집에선 어떤 환자가 있어서 어떻게 우환을 잘 극복하고 또 어느 집에선 어떤 사람이 어떤 병으로 고생하고 있는지 훤하게 알게 된다. 약만 조제하는 게 아니라 인생의 약도 처방하는 것이다.


두 분 다 우리 나라 최고의 명문대를 졸업하셨다. 그러니 약을 사러 왔다가도 아이들의 진로 문제나 가정사의 갈등을 더러 의논해 왔던 것이다. 두 선생님은 그다지 살가운 성격은 아니지만 무뚝뚝한 말씀으로나마 혜안을 주곤 했다. 동네 사람들은 감사의 표시로 손수 만든 음식이나 색다르게 생긴 것이 있으면 나누곤 하고 있다. 초봄에 새로 나온 상치라든가 부추가 생기면 어김없이 갖다 드리는 사람이 있다. 가을이 되면 전어를 잘 손질까지 해서 가을이라며, 활짝 웃으며 약국으로 들고 들어가는 것이다.

이 우리약국이 최고의 시련을 맞이한 건 의사의 조제 없이는 약을 약사가 처방할 수 없게 하는 법이 시행되던 때였다. 갑자기 약국의 매출이 절반으로 떨어졌으니 약국을 운영하던 사람은 당연히 당황할 수밖에. 의사의 처방 없이도 약사가 약을 조제할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특히 그때에는 동네 건강 지키미 역할을 톡톡히 했다. 우리 동네 사람들 입장에서 보자면 오히려 우리를 잘 알고 경험이 많은 두 분 선생님이 더 믿음직하지만 처방은 의사만이 할 수 있게 한 것이 야속한 때도 있었다.

지금은 그야말로 소일거리로 약국을 운영하신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이제 또 다른 소망이 생겼다. 약국 할머니 할아버지가 구십 아니, 백세까지 건강하셔서 약국을 운영했으면 하는 소망이 그것이다. 이제 인생은 백세 시대라고 입을 모은다. 이런 마당에 일거리도 없이 오래 살기만 하면 무엇하는가 말이다. 일거리 없이 오래 살기만 하면 천덕구러기나 구박데기밖에 더 되겠는가 말이다. 그러니 약국 할머니 할아버지가 오래 살아서 약국을 오래 경영해 주시면 그만큼 우리에게도 희망이 생기는 게 된다. 우리도 저렇게 오래 오래 하던 일을 계속하며 살 수 있다는.

중늙은이 측에 드는 우리 또래 몇 명이 모여 수다를 겸해 일차 목표를 정했다. 약국 할머니 할아버지가 90세까지 저 약국을 운영할 수 있도록 마음으로 빌어드리고 가능한 일을 돕자고. 간단한 약은 꼭 우리 약국에서 사고 주변에 사람들도 그렇게 하기를 유도하기로 약속했다. 90세가 되면 그건 그때가서 다시 의논을 하기로 했다. 사람이란 참 묘한데가 있어서 그렇게 하고 나니까 아닌게 아니라 정말 우리약국을 지날 때마다 마음으로 ‘저 선생님들이 90살이 되도록 저 문이 활짝 열려있기를 기원합니다’라고 참으로 성실하게 기원하게 되던 것이다.

사람은 일이 있어야 사람이다. 특히 노인일수록 소일거리가 있어야 한다. 일이 없으면 사람은 아무 것도 아니다. 돈을 벌고 안 벌고는 별도의 문제다. 약국의 두 분도 늘 말씀하시곤 한다.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다가도 약국에만 나오면 살만해진다는 것이다. 두 분이 동갑이신데 살림집에만 들어가면 두 분이 티격태격 하다가도 약국에 나오면 슬그머니 풀어진다는 것이다. 그 연세에도 티격태격할 일이 있느냐고 여쭤면 설핏 웃으며 “살아있는 동안엔 늙으나 젊으나 매 한 가지지, 뭐 다르겠노? 사람이란 안전 거리 없이 너무 장시간 붙어있으모 짜증이 나게 되있제. 그라이 하나는 약국으로 하나는 집으로 가서 잠시 서로를 달리 보는 거리가 필요하지”하신다. “다행히 집이 알맞게 가까워서 그것도 참 좋네”라고 덧붙이신다. 약국의 살림집은 약 오십미터 거리에 있다. 살림집이 이층이라서 그 계단을 오르내리는 게 또 운동 량으로 적당하다고.

소일거리, 중늙은이로 살고 있는 이즈음 보다 구체적으로 생각해야겠다. 실은 일은 삼십대 사십대보다 더 밀도있게 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 들어 부쩍 이상한 증세를 발견한다. 건방증이야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니 그렇다쳐도 이웃 아이들 이름이 제때 생각나지 않는 것이라든가 며칠 전에 했던 일이 기억이 전혀 나지 않은 일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흐린 날씨에는 발목이 시린 게 점점 심해지고 있다. 쑥스러워서 약국 선생님께 의논할 수도 없고 은근 걱정이다.

며칠 전에는 남의 이름을 들먹이며 기어이 약국 선생님들께 여쭤 보았다. 어떻게 하면 잘 늙어갈 수 있느냐고. “나이를 먹어갈수록 일을 바꾸지 않아야 할 거야. 특히 오래 한 일은 웬만하면 그냥 평생 해! 변득부리지 말고 말이야. 몸이 아파도 쉬었다가 회복되면 또 계속하면 되지. 큰 병 크게 앓지 않게 아프면 제때 병원 가고. 뭐든지 적당히 하고 자주 쉬어주고...다 두고 가장 중요한 게 있어. 나도 그게 가장 아쉬워. 생각하면 많이 슬퍼...이 사회를 위해 뭔가 작은 일이라도 지속적으로 해온 게 없단 말이지. 돈을 아무리 모았어도 그게 없었다면 다 헛 거야. 까짓꺼 쌀 10킬로면 한 달을 살고도 남아. 먹고 산다는 핑계로 바로 내가 사는 내 세상 내 이웃을 살피지 않으면 그것이 큰 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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