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홍의 공적서(功績書)-3
산홍의 공적서(功績書)-3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07.13 19:11
  • 14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사 연구실장
 

*매천 황현 선생의 <매천야록>번역본 2008년 9월 발행 173~175면에 다음과 같이 기록됐다.


‘진주 기생 산홍(山紅)이란 여인은 미모와 기예가 모두 뛰어났다. 이지용이 천금을 가지고 이르러 첩이 되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산홍은 사양하며 말하기를 “세상 사람들이 대감을 오적의 우두머리라고 하는데 첩은 비록 천한 기생이라고 하나 스스로 사람 구실을 하는데 무슨 까닭으로 오적의 첩이 되겠습니까? 하니 이지용이 대노하여 그를 두들겨 팼다’

어떤 사람이 시를 지었다.

‘세상 사람들이 다투어 매국인에게 나아가 노안벼슬이 날로 분분하네. 자제의 집에는 금과 옥이 집보다 높이 쌓였는데 산홍 한 미인의 젊음을 사기는 어렵구나’

*<황성신문> 1908년 2월 15일자에는 미인일소경천금(美人一笑經千金)이란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보도됐다.*
“몇 일전 전 내부협판 이봉래의 생일 잔치에 일대 호결과 일대 미인이 모였는데 중추원 고문 이지용 씨가 이름난 기생 산홍의 미소와 얼굴에 백가지 애교가 넘치는 것에 침혹하여 1천6백원 가치가 되는 보석. 반지등을 정급하고 첩이 되어 줄 것을 요구하며 미친 것 같이 술에 취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더라”

칠언절구에 의하면

묻노니 너는 촉석루를 따라 왔는가 (問爾來從矗石樓)

지조 낭자 짚은 향기가 천추를 비추네(介娘芳烈照千秋)

지금껏 빛나는 누각은 예 그대로(至今惟有丹靑在)

장차 행인이 제 사를 흐르게 한다(長使行人悌泗流)

*대한매일신보 1906년 11월 29일에 보면*

특사 이지용씨는 일본에 정주한 되 청주에 막향이요. 산홍이 가던 가면 기생 또 있을까 무섭소.

이지용은 일본으로 돌아간 이등박문(이토우 히로부미)에게 통감으로 계속 머물러 주기를 청원하기 위한 특사로 1906년 11월 23일 임명되었고 이 때 이홍경 처도 동행케 된다.

양회갑(梁會甲)선생(1884~1961)이 쓴 양재집이 문집으로 발행되었는데 보면 매우 놀라운 내용이 나온다.
전남 화순군 능주 초방리 출신 유학자로 소년시 부터 영리해 인근에서 천재가 나왔다고 아구동성 말하는 천재 아동이었다.

조부로부터 천자문. 명심보감(秋適先生 원저자)을 배우고 1898년 부친의 권유로 송병선 선생의 문인으로 들어가 열심히 배웠으나 을사조약 이후로 과거시험을 단념하고 성리학을 배우고 연구했다.
1914년 이후부터 기우만(奇宇萬) 선생의 문인으로 들어가 스승 사후에 문집을 간행하고 영당을 건립할 때 앞장 서기도 했다.

*<정재집.正齋集>권2. 58면에 보면

(妓山紅數罪賣國賊不許寢自死)(기산홍수죄매국적불허침자사)제목으로 글을 남겼는데 기생 산홍이 매국적의 죄를 알고 잠을 자기를 불허하다 스스로 자결했다라고 해석된다*

또 산홍이 한 조각 상여타고 길을 떠났다.(山紅一片柳車路)라고 기록했다.

의기 산홍은 친일파 을시오적과 대항하다 스스로 죽으니 논개 사당에 논개의 시가 걸려 있고 촉석루 바로 아래 바위에 산홍(山紅)이란 이름이 가로 세로 30cm 크기로 새겨져 있어 큰 뜻을 영원히 기리고 있다.

*참고문헌(參考文獻)*
1. 매천야록(梅泉野錄)
자결순국 열사 매천 황현 선생이 지은 매천야록에 기록되었음.
2008년 발행 173~175면
2. 대한매일신보 1906년 11월 22일 2면
3. 대한매일신보 1906년 11월 24일 3면
4. 황성신문 1908년 2월 15일 2면
5.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2008년 산홍편
6. 한국문화콘텐츠닷컴 2008년 한국콘텐츠진흥원 산홍편
7, 진주항일운동사. 진주 문화원 발행. 추경화(秋慶和)지음
2008년 445면에 기생 산홍의 항일정신을 열거함.
8. 정재집(正齋集)
양회갑(梁會甲) 지음. 1993년. 272면
9. 진주성 문화유적 해설집 제 1집
진주 문화원 발행. 2009년. 118면~119면
10. 진주성 촉석루 숨은 내력
하강진(교수)지음. 2014년. 455면~467면
11. 경남일보 2016년 6월2일 보도 강민중 기자
12. 경남도민일보 2016년 6월 7일 보도. 김종현 기자
13. 오마이 뉴스 2016년 6월 5일 보도. 윤성효 기자
14. 공감신문 2016년 6월 4일 보도 김대호 기자
15. 사진 - 논개 사당 의기사에 걸린 산홍의 시(詩)
천년간 의로운 진주성 쌍묘와 높직한 다락 있으니 부끄러운 사람들이 할 일없이 피리와 북장단에 너절히 놀고 있네 라는 내용이다.
16. 사진 촉석루 바로 아래 바위 벼랑에 가로 세로 30cm 크기로
산홍의 이름을 새겨 영원히 기리고 기념함.
17. 부산일보 2016년 6월 5일 보도 이선규 기자
18. 연합뉴스 2016년 6월 4일 보도. 지성호 기자
19. 경남매일 2016년 6월 2일 연합.
20. 프레시안. 을사오적 첩 사양하고 죽음 택한 의기 산홍.한창기 기자.
21. 뉴시스(인터넷신문)2016년 6월 2일 보도. 정경규 기자.
22. 헤럴더 경제 2016년 6월 3일 보도.
23. 경남도민신문 2016년 6월분
2016년 6월 8일. 2016년 6월 15일 기고문에 산홍 공적을 등재.
24. 위크리 인테넷신문. 보도. 2016년6월 4일
25 경남일보 2014년 4월월 15일 보도. 하강진 교수의 산홍편.
26. 각 언론. 방송 50여 차례 보도되었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