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여성교양서 내훈(內訓)
조선조 여성교양서 내훈(內訓)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07.19 18:40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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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
 

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조선조 여성교양서 내훈(內訓)


우리 조상들의 여성교양서인 내훈(內訓)은 조선조 제7대 임금인 세조의 며느리요 제9대 임금인 성종의 어머니로 인수대비(仁粹大妃)의 칭호를 받은 소혜왕후(昭惠王后)의 한씨(韓氏)가 지은 책이다.

소혜왕후는 청주 사람으로 좌의정을 지낸 서원부원군 한확(韓確)의 따님으로 그는 세종 19년 (1437)에 나서 세조의 세자인 이장(李暲)과 결혼하여 수빈(粹嬪)으로 책봉되고 성종 때 세자로 죽은 그 아버지를 덕종(德宗)으로 추존하자 인수왕비로 책봉되어 내외의 정사를 보살피다가 손자인 연산군이 생모 윤비(尹妃)가 모함으로 폐위 사사된 사실을 알게 되어 참혹한 보복을 할 때 병상에 있던 대비(소혜왕후)가 이를 꾸짖자 연산군은 머리로 대비를 받아 대비는 얼마 후 연산군 10년(1504)에 죽고 말았다.

소혜왕후는 궁중의 비빈(妃嬪)과 부녀자들의 교육을 위하여 열녀 여교 명감 소학의 4책에서 여성 교육에 필요한 것을 가려서 이를 3권 7장으로 만들고 국문으로 풀이하였으니 곧 내훈이다.

인수대비는 타고난 자질이 엄격하고 바르고 왕손들을 기르는데 있어서도 그들이 조금이라도 잘못이 있으면 거의 가리어 덮어두는 일이 없고 그때그때 바른 태도로 경계하고 바로 잡았다.

그래서 두 궁전에서 화룡삼아 폭빈이라 하였다. 세조대왕은 주상전을 부를 때 아자(我子)라 하였고 대왕대비(정희왕비) 월산대군(이정)을 부를 때 오자(吳子) 곧 우리 아들이라고 부르면서 위로하였다. 그 엄격한 가르침을 이와 같이하여 오늘에 이르렸으니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그는 윗분들이 오랜 즐거움을 받드는 틈틈이 거느리는 부녀자들의 무지함을 근심하여 부지런히 가르쳤다. 그러나 열녀 소학 등 책의 분량이 많아 공부하는 사람들은 아주 힘이 들었다.

그래서 친히 슬기로운 결단을 내려 그 결실이 요긴한 것을 뽑아 한데 모아서 모두 7장의 책으로 합본하고 이름하여 내훈이라 하였다. 그리고 또 이를 국문으로 번역 그들로 하여금 쉽게 깨우칠 수 있게 만들어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한번 읽어보면 내용을 알게 하여 익히고 읽는데 편리하게 만들었다. 역대의 어진 왕비는 시부모를 섬기는데 부지런하여 인자하고 효도하는 착한 행실을 다하고 아들을 가르치는데 엄격히 하여 국가의 경사스러움을 이룩한 사람이 많았는데 몸소 훈계하는 책을 지어서 경계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이 책은 인수대비전하가 옥엽(玉葉:왕손)을 가르치는데 엄격하여 도리를 후세에 드리우게(敎訓) 한 사람은 드물었다.

틈틈이 읽고 익히고 외우고 깨쳐서 마음속에서 음미하고 몸소 실행한다면 풍속을 교화하는데 도움만 되겠는가 아아참으로 지극히 훌륭한 분이로다.

1475년 성화(成化) 을미 10월 15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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