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백의종군 이순신 장군 재임용
진주성-백의종군 이순신 장군 재임용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07.20 10:58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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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사 연구실장

 
진주성-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사 연구실장-백의종군 이순신 장군 재임용

이순신 장군은 투옥되었다가 겨우 사형을 면하고 백의종군하게 되었고 진주시 수곡면(운곡)에 있는 손경례 집에서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 받게 된다.

현재의 지번은 경남 진주시 수곡면 원계리 318번지이며 후손 손창수의 조카 손도근씨가 관리중이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1597년 3월 선조의 미움을 받고 왜군의 비밀공작 등으로 모든 관작을 박탈당하고 투옥되고 말았다. 이 때 유성룡 등의 구명운동에 의해 겨우 사형집행을 면하고 특사로 석방되었고 백의종군할 수 밖에 없었다.

이순신에 대한 복직 명령은 1597년 7월 22일 하달되었으나 그 같은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이순신은 7월 27일 손경례의 집에 도착해 5일간 숙식하면서 원계리 인근 진뱀이 뜰에서 군병을 점검했고 남해 현령. 소촌 (문산)찰방 등을 만나고 있었다.

수곡일원에서 군사들을 독려하고 점검했지만 말 한필 없고 활.창도 없는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복직 명령이 내린지 2주 만에 선조의 교서와 유서를 들고 찾아 온 양호 선전관은 이순신에게 재임용장을 전달케 된다.
5일간 자신의 집에 숙식케 했던 손경례는 충심이 높은 분이었고 직책없는 일반 백성으로서 이순신 장군에게 갖가지 정성을 다했다.

손경례 후손들과 밀양 손씨 문중에 의해 이순신이 재 임용된 유서깊은 장소임을 말로만 전해 왔을 뿐 특별한 기념이 없었다. 수 백년 세월이 지나 이순신 장군에 관한 기억도 소실되고 말았다. 이순신 장군이 임란 후 까지 살아 큰 출세를 했다면 손씨 문중에 대한 배려가 있었을 것이나 그렇지 못했다.

손씨 문중에서 40여 년 전부터 충무공 사적비 건립을 요구했으나 성사되지 못했고 1975년 12월 당시 문화공보부에서 손씨 문중의 도움을 받아 수곡면 진뱀이 뜰에 충무공군사훈련유적비를 건립했다.

또 유숙지였던 손경례 집터에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 삼도수군통제사 재수임사적비라는 제목의 비가 건립됐다. 현재 임진왜란 당시 건물은 없어지고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크기와 구조의 건물이 있는데 수많은 관광객이 찾기엔 작고 초라해 당장 확장할 필요가 있다.

이순신 장군은 같은 해 11월 노량 해전에서 전사해 충무공(忠武公) 시호가 내려지고 많은 세월이 지난 다음 부원군(府院君) 벼슬도 추증받게 된다. 현재 남해군에는 노량에 충렬사와 남해읍 방향으로 이락사가 있다.
금년 8월 11일 경남문화예술회관에서 이순신 장군이 글을 짓고 김구 선생이 붓으로 쓰고 조각가 추경화가 입체 부조한 誓海魚龍動 盟山草木知라는 이름의 전시회가 개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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