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용암사지 유감
진주성-용암사지 유감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07.21 18:55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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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용암사지 유감


풍수지리학의 종조이신 도선국사가 삼한의 전란을 잠재우고 통일을 이루려면 세 암사를 지으라는 지리산 성모천왕의 현몽으로 승주의 선암사와 광양의 운암사 그리고 진주시 이반성면 영봉산 자락에 용암사를 창건했다.

솟을대문인 비연문을 들어서면 꽤나 널따란 평평한 반석의 틈새를 벌려놓은 협곡은 좌우로 10여m는 족히 넘을 수직의 절벽이 마주보고 섰다. 절벽의 벽면은 시루떡을 켜켜이 쌓은 듯이 검정색의 퇴적암이 층층으로 쌓여서 이끼와 담쟁이덩굴로 급한 곳을 가리고 억겁의 세월이 멈춰버린 정적 속에서 묻힌 채로 옛 내음을 풍긴다.

왼편 절벽 아래로 절집 같으면 요사가 앉을 자리에 시골의 여염집 같은 낡은 건물이 앉은 뒤로 퇴색한 목조기와 건물인 해주정씨의 장덕재가 앉았는데 제각지기 노부부도 노옹이 먼 길 떠나자 마을로 내려가고 손때 묻은 세간들만 널브러져 나뒹굴고 사연 담긴 주련들은 기둥마다 빛바래고 결도 삭은 대청마루 흙먼지가 수북한데 벼랑 밑에 웅크린 농포집장판각은 목판은 오래전에 충의사로 옮겨가고 현판은 붙은 채로 빈 전각만 괴괴하다.

장덕재 옆으로 돌아가면 평평한 돌 판을 깔고 거무스름한 돌 거북은 ‘대천태종홍자국통비’ 라 쓰인 석비를 등에 업고 무슨 업보가 그리도 많아선지 천년도 마다않고 주야장천 엎쳤는데 세월이 버거워서 늘인 목이 부러진 채 돌덩이로 턱을 고여 가까스로 붙였건만 측은하고 애처롭다. 돌 거북 뒤에는 석등과 나란하게 보물 제372호인 승탑이 신이 빚은 솜씨인지 정교하여 멋스럽고 비켜 앉은 둔덕위엔 옹색하기 그지없는 전각 하나 홀로섰다. 아귀가 맞지 않은 널판지문을 열면 큼지막한 화강암의 석좌불이 좌대도 없는 돌바닥에 앉아서 인적이 반가워서일까 근엄함도 버리시고 미소로만 반기신다. 경상남도 지방유형문화재 제4호로 고려시대에 조성한 지장보살석좌상이다.

천년세월 살림살이 향로 하나 촛대 한 벌 이만하면 흡족하고 연화좌대 없어도 반석위에 앉았으니 사부대중 공덕이라 이 또한 감사하고 널빤지로 바람 막고 판자위에 기와 얹어 비 가림을 하였으니 이만 하면 족하다고 미소 짓고 계시지만 들고 나는 사람 없어 옛 세월이 허망 할뿐 불심도 속절없고 신심도 속절없다.

문화유산의 보존이 너무도 허술하다. 훼손은 한 순간이지만 조성을 하려면 천년도 모자란다. 제각이 옮겨가고 범종소리 언제 날지 하염없어 처량하니 어찌하면 좋으리까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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