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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이 놈 데라우치야…김진환/창원국학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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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8.04  18: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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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환/창원국학원 부원장-이 놈 데라우치야…

8월은 광복의 기쁨으로 기억하지만 망국의 굴욕이 교차하는 달이다. 8월 한 달 동안 나는 가슴에 조기를 단다. 나라가 치욕과 능멸을 당한 날이라고 하여 경술국치일이 바로 8월 29일이다. 경술국치일이 정해지기 5년 전인 1905년 대한해협에서 러시아 발틱함대를 물리친 일제는 그 기세가 등등하여 본격적으로 우리를 삼키기에 혈안이 되어 잠을 자지 않았다. 일제의 혀가 쉼 없이 날름거리던 경술국치 3년 전인 1907년 8월의 첫날,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됐다.

해산직전 그들은 용의주도하게 전국에 주둔하고 있던 일제13사단을 서울에 집결시키는 한편, 인천에 구축함 3척을 정박시키고 한국 연안에 제2함대를 초계시켜 7월 31일까지 한국군 해산을 위한 일본군의 병력 배치를 완료하였다. 그런 다음 7월 31일 밤중에 우리 조정을 위협하여 군대 해산에 대한 황제의 칙령을 반포하게 하는 동시에 군대해산 시에 발생하게 될지도 모를 한국군의 봉기를 철저히 진압하여 줄 것을 이완용의 이름으로 통감 이토에게 의뢰하게 하였다. 이리하여 그 다음날인 8월 1일 오전 8시에 동대문 훈련원에서 군대 해산식이 거행되었다. 사병들에게는 훈련원에서 도수 교련을 한다고 속이고 각 부대 장교와 일본 교관의 인솔 아래 맨손으로 훈련원에 모이게 한 뒤 전격적으로 무장을 해제했다. 중무장한 일본군 포위 속에 조선 무인들의 혼이 서린 성지에서 군모가 벗겨지고 견장이 뜯겨지는 치욕에 그들은 통분했다. 종로에서 시위 군중과 함께 일본 경찰과 총격전을 벌여 명성이 높았던 제1연대 제3대대와 평소 배일 부대로 지목되던 임재덕 휘하의 제2연대 제3대대도 집합하였다. 그러나 제1연대 제1대대와 제2연대 제1대대가 불참하여 전령이 동분서주하는 사이 남대문 쪽에서 총성이 들려오자 서둘러 해산식을 거행하였다. 그리고 일제는 이른바 은사금이라는 명목으로 병사들에게는 몇 푼의 지폐를 지급하였는데, 이를 받은 병사들은 그제야 사태의 진실을 깨닫고 땅을 쳤지만 이미 완전히 무장해제를 당한 몸인데다가 기관총으로 중무장한 일본군 부대가 훈련원을 이중 삼중으로 포위하고 있어서 속수무책이었다.

황실 경호를 담당하던 시위대 제1대대장 박승환 참령은 “군인으로서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신하로서 충성을 다하지 못했으니, 만 번 죽어도 아까울 것이 없다”며 굴욕 대신 권총으로 자결했다. 장병들도 무기를 들었다. 남대문등지에서 일본군과 격렬한 시가전이 벌어졌다. 전투는 한나절도 안 돼 결판이 났다. 탄약고는 이미 일본군이 장악한 뒤였고 갖고 있던 총탄이 부족해 맨주먹으로 싸웠다. 68명이 숨지고 100명이 부상당했으며 516명이 사로잡혔다. 뿔뿔이 흩어진 장병 중 일부는 국내 의병에 합류하거나 만주로 건너가 독립군 핵심이 됐다. 일제는 이와 유사한 기만적 방법을 사용하여 8월 3일부터 9월 3일까지 북청진위대를 끝으로 한 지방 진위대 모두를 해산시켰다.

8월 1일에 우리군대가 해산되고 8월 29일에 국치를 당했으니 한달만에 그들은 우리를 완전히 입에 넣은 것이다. ‘경술국치일’란 ‘경술년에 나라가 당한 치욕스러운 날’이라는 뜻으로 일제에게 우리의 주권을 송두리채 빼앗긴 날이다. 1910년 6월 소네의 뒤를 이어 자리에 앉은 일제의 3대 통감인 데라우치는 아주 영악한 인물이었다. 이른바 조선을 소화시키지 위한 섭취작업의 달인이었다. 조선인의 특징, 문화, 습관 등을 주도면밀하게 조사하여 우리를 우리끼리 이간질시키고 분열시키는 계획을 세워 자기들이 아니면 조선민중을 다스릴 나라가 없다는 식으로 정책을 펴내갔다. 데라우치는 6년간 그렇게 우리를 씹었다. 이로서 학교에서도 일본의 헌병이 칼을 차고 들어왔고 경찰 업무도 그들이 대신하면서 우리를 위협했으며, 일본의 정책에 반대하는 자는 가차없이 처단하고 신문·잡지를 엄중하게 검열하자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서서히 잃어갔다. 일제는 이렇게 만들어 놓은 후, 이완용을 이용하여 강제합병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후 데라우치는 통감에서 총독으로 직함을 바꾸며 6년동안 우리를 그들 배속에서 소화시키는 작업을 해간다. 창덕궁의 대조전에서 이루어진 합병 조약의 내용은 우리나라의 통치권을 일본 천황에게 완전히 넘긴다는 것이었다.

8월 1일과 29일은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 이글을 쓰는 나의 8월은 결코 덥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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