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열며-땀띠를 아시나요
아침을열며-땀띠를 아시나요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08.16 19:18
  • 1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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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강영/소설가-땀띠를 아시나요


우와, 땀띠가 났다. 가려워 죽겠다. 좀쌀 만한 물집이 잡혔는데 그걸 터뜨리고 나면 가려움이 조금 가라 앉는다. 그런 후엔 땀띠 연고를 발라준다. 이상하다. 어릴 때 엄마의 몸에 땀띠가 난 걸 보면 몸통에 났는데 나는 목과 손등에 땀띠가 났다. 가려워 미치겠다. 잘 견디더니 어젯밤 더위를 못 이기고 땀띠의 침입을 당했다. 왕골 돋자리를 깔고 선풍기를 두 대나 틀었는데도 이 모양이다. 반듯이 누우면 손등이 바닥과 맞닿아 바람이 안 들어간 모양이다. 뒷 목도 마찬가지고. 가렵고 따갑기로는 목이 더하다.

될 수 있으면 날씨 이야기를 않으려 했는데 올해 더위는 안 하고는 안 되겠다. 만나는 사람들이 하나 같이 죽겠다고 난리다. 정말 왜 이렇게 덥지? 장마도 사라진 걸까? 장마는 고사하고 소나기도 안 내린다. 어제 낮에 잠시 찔끔 소나기라고 왔는데 별 같잖은 소나기였다. 굵은 빗방울이 후두둑 몇 방울 떨어지더니 곧 그치고는 한 시간을 뜸을 들였다. 그 한 시간은 그야말로 찜통 안 같은 더위에 우리는 갇혀 있었다. 햇볕에 뜨겁게 달궈진 땅에 후두둑 찔끔 비가 왔으니 그 비는 오롯이 수증기로 변해 온 동네를 순식간에 한증막으로 만들어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한 시간 후, 소나기성 비가 10분 가량 오기는 했는데 바로 해가 여봐란 듯 쨍쨍 나버렸으니.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매미가 울어댔다. 매미소리는 더욱 힘이 세져서는 듣는 사람을 질리게 했다. 울고싶은 공포의 밤이 되었다. 낮에 태양이 따글따글 달궈놓은 건물은 새벽이 되어도 식지 않고 뜨거운 열기를 푹푹 뿜어내는 것이다. 창문이라는 창문은 다 열어도 소용이 없다. 시원한 바람이 씨가 말랐는데 창문 연다고 들어와? 어떻게 공포가 아닐 수 있는가 말이다. 에어컨? 아무리 더워도 참으면 되지만 전기세푹탄 맞으면 돈은 어디서 나오냐구???

멍청한 남편은 팬티만 입고 부채질을 연신 해대며 “그래도 누진제는 유지돼야 혀”란다. 저런 얼어죽을, 지금 누진제가 문제여? 내가 쾍 소리쳤다. “저 여편네가 시방 지금 누진제가 문제가 아니믄 머시 문제여?” 그걸 몰라서 물어욧? 에어컨이 문제 잖아욧!!! 내가 숨돌릴 틈도 안 주고 다다다 해붙였다. 남편은 가장이 돼 가지고 에어컨도 장만하지 못한 게 죄밑이 되어 부채를 앞세워 합바지 방구새듯 슬그머니 밖으로 새나갔다. 엄마는, 아빠 볶는다고 더위가 사라지기라도 해요, 왜 그렇게 아빠를 못 살게 굴어요? 빌어먹을 이늠으 집구석을 확 폭파를 해버려?

속으로는 별일이다 싶으면서도 화가 푹푹 나는 것이다. 조금 후에 남편이 돌아오며 “우리도 휴가 가자구!” 했다. 이건 또 무슨 자다가 봉창이래? 당신 친구 팬션이 비지 않아서 못 간다메? “아니에요, 지금 비었대, 지금 막 말이여! 사용하던 사람이 집안에 먼 일이 생겼디여” 딸과 아들과 남편과 나는 갑자기 바삐 서둘렀다. 딸은 화장하느라 땀을 뻘뻘 흘리고 깔끔쟁이 아들은 또 샤워를 한다고 난리고 남편은 차를 닦느라 신이 났다. 나? 나는 식구들 먹일 걸 사느라 마트로 팽 해날렸지. 왕갈비 오인 분, 소금구이 두 근, 라면 다섯 봉지, 김치, 수박....

차를 타고 한 시간 정도 달려서 차에 탄 채 배를 타고 딱 오 분 걸려서 또 차에 탄 채 우리가 묶을 팬션에 내렸다. 팬션에서 점심을 먹고 느닷없는 휴가에 대해 감사와 감탄을 하며 좀 쉬었다. 바닷물이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해변으로 가서 수영을 했다. 안 돼겠다. 우리가 휴가를 간 데를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으려고 했다. 너무 유명해져서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 올까봐. 그런데 생각하니 이 글을 보는 사람들은 대개 진주 사람들일 것이다. 그곳은 경기도니까 별로 당기지 않을 테니까. 내가 자랑하고 싶은 휴가지는 인천 영종도 옆에 붙어 있는 ‘무의도’라는 섬이다.

내가 사는 곳이 경기 북부이니 인천 영종도는 한 시간 거리다. 차에 탄 채로 배를 타서 오 분 거리이니까 결국 집에서 한 시간 거리의 휴가지면 이건 대박이다. 자연 경관은 더 좋을 수 없을 만큼 탁월하다. 작은 제주도라고 하면 될려나. 소무의도가 있는데 무의도와 자전거와 도보로만 갈 수 있는 곳이다. 무의도가 제주시라면 그 소무의도는 서귀포가 되겠다.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덕분에 그런 자연 경관이 거의 훼손되지 않았다. 바닷물은 맑고 오솔길은 청초했다. 거기다가 적당히 붐비고 적당히 한가하고.

아, 그런데 영종도와 다리로 잇는 공사가 진행중이다. 조만간 그 작고 아름다운 섬이 사람들의 발길에 짓밟혀 오염되는 날이 오면 어쩌지? 걱정이다. 다리를 못 놓게 확 마 훼방을 놀까보다. 그것은 그때 가서 걱정하자. 세상에, 바닷물에 서너 시간 담그고 나왔더니 땀띠가 다 죽어버렸다. 배고픈 줄도 모르고 수영을 하다 돌아와 소금구이를 해먹는데 그 맛이 또 꿀맛이라. 엄마, 우리 이제 여름 휴가는 이리로 와요. 딸이 호들갑을 떨었다. 아빠가 이번엔 수훈 갑이에요. 아들이 남편을 추켜세웠다. 디저트로 수박을 먹으며 깊어지는 여름밤을 즐겼다.

밤이 되자 초 가을처럼 선선했다. 새벽에는 가을처럼 썰렁해서 나는 자다가 일어나 이불을 내려서 식구들마다 다 덮어주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들은 자게 내버려두고 남편과 나는 동네를 산책했다. 무의도는 의외로 산이 높고 골이 깊었다. 악산이었다. 시를 쓰는 남편과 소설을 쓰는 나는 상상력을 발휘해서 이 섬의 유래를 구체화해 보았다. 무의도의 '무' 자는 검을 뜻하고 '의' 자는 의로움을 뜻한다고 했으니 의로운 검객들이 살았다는 뜻이라면 나라에 반기를 든 의병들이나 의인들이 수배를 피해 숨어들어와 살게 된 게 이 섬의 유래가 아닐까?

산책을 하던 남편이 아예 차로 섬을 한바퀴 돌자고 제안했다. 섬은 종단하는 데 차로 채 십 분이 안 걸렸다. 참으로 아름답게 작은 섬이다.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아이들이 아직도 자고 있는 팬션으로 돌아올 즈음, 나는 섬을 사랑하게 되었다. 모쪼록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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