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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사지(四知)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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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9.05  18:4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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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사지(四知)

위 말은 하늘이 알고, 귀신이 알고, 내가 알고, 네가 안다는 의미이다. ‘후한서(後漢書) 양진전(楊震傳)’에 나오는 내용이다.

양진(楊震)은 후한(後漢) 안제(安帝)때의 인물이다. 홍농(弘農) 화음(華陰)출신으로 자(字)를 백기(伯起)라 했다. 어려서부터 배움을 좋아하여 폭넓은 독서와 깊은 학문을 쌓아 사람들이 ‘관서공자양백기(關西孔子楊伯起)’라고 일컬었다. 그러나 벼슬이 늦어 5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수령으로 나갔다. 대장군 등즐(鄧騭)이 양진의 명성을 듣고 무재(茂才: 관리 채용 방식의 하나)로 발탁함으로써 형주자사(荊州刺史), 동래태수(東萊太守), 탁군태수(涿郡太守)를 역임했다. 양진은 공정하고 청렴하여 사사로운 접견을 금했으며 자손들에게 채식과 나들이 할 때는 보행(步行: 탈 것을 타지 않고 걸어서 다님)을 하도록 했다. 친지가 자손의 장래를 위해 생활수단을 강구해 주도록 권유했지만, 양진은 거절했다. ‘후세에 청백리의 자손이란 말을 듣도록 해주는 것 이상으로 후한 유산이 더 있겠느냐?’라는 생활 철학을 가르쳤다.

양진이 동래태수로 부임할 때의 일이다. 창읍현(昌邑縣)에서 하룻밤을 쉬게 되었다. 그곳의 현령 왕밀(王密)은 양진이 형주자사로 있을 때 무재로 추천하여 현령이 된 사람이었다. 왕밀은 그 은혜를 못 잊어 하다가 마침 양진이 창읍에서 묵는다는 소식을 듣고 밤늦게 황금 열 근을 싸가지고 숙소로 찾아갔다.

“태산 같은 은혜를 입고 한 번 찾아뵙지 못하여 송구하기 짝이 없습니다” “별소릴 다 하는군. 공무에 바쁜 사람이 일일이 인사 차릴 수 있나. 얼마나 바쁜가?” 두 사람은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눴다. 왕밀이 금덩이를 슬며시 꺼내 놓았다.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물건을 생각해 보았으나 갑자기 마땅한 것이 없어 이것을 가져왔습니다. 저의 성의니 거두어 주십시오” “나는 자네의 학식과 인물됨을 알았기 때문에 자네를 추천하여 국가에 공헌하도록 했던 것이네. 그런데 자네는 나란 사람을 너무도 모르는 것 같으이…” “아, 아니올시다. 제가 어찌 태수 어른의 고귀하신 인품을 모를 까닭이 있겠습니까? 은혜를 입은 저로서는, 거듭 말씀드리지만 제 성의는 표해야 하겠기에 이러는 것이며 이 깊은 밤에 누가 알 리도 없지 않습니까? 거두어 주십시오” “이 사람,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건가! 내가 자네를 추천한 것은 국가에 유용한 인물이 되겠기에 추천한 것이고, 자네가 직책에 충실하여 지위가 높아지고 나아가서 국가의 동량(棟樑)이 된다면 자네를 추천한 사람으로서 큰 보람으로 여길 터인데 한갓 물건으로 보답하려 한단 말인가? 또 이 깊은 밤 알 사람이 없다니 왜 없단 말인가? 하늘이 알고〔天知〕, 귀신이 알고〔神知〕, 내가 알고〔我知〕, 자네가 아는데〔子知〕, 어찌 아는 이가 없단 말인가? 그런 소릴 계속하려면 당장 물러가게!”양진의 준엄한 나무람을 듣고 왕밀은 얼굴이 벌게져 몸 둘 바를 모르다가 물러나고 말았다.

양진은 태복(太僕), 태상(太常)을 거쳐 삼공(三公)의 지위인 사도(司徒)가 되었다. 양진은 국정의 폐단을 충간(忠諫)하여 시정을 요구하다가 권신(權臣)들의 미움을 사서 도로(徒勞)에 그치자 “내가 나라의 은혜를 입어 고위직에 있으면서 교활한 간신을 미워했으나 주벌(誅罰)을 가하지 못했고, 혼란을 조장하는 요녀(妖女)를 싫어하면서도 금지시키지 못했으니 무슨 면목으로 일월(日月)을 대할 수 있겠는가?”하고 독배(毒杯)를 마시고 죽었다.

조선일보 주필 송희영 이란 자가 2011년 9월 대우조선 초청으로 전세기를 타고 8박 9일간 유럽여행을 하면서 하루 사용료가 몇 천 만원이나 하는 호화요트도 타고 유희를 즐기면서 다녀왔다고 한다. 심각한 언론윤리 위반이다. 지난 8월 31일자 조선일보 신문에 독자들에게 사과문을 실었는데 그 내용 또한 가관이다. 부적절한 처신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사의를 표명하여 사표를 수리했다는 정도 이다. 좀 더 그 내용을 ‘인정’할 것이 아니라 ‘고백’을 했어야 한다. 가진 자 들의 이런 태도에 민초(民草)들은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조선일보의 50년 독자였는데 인제 신문을 끊어야 겠다. 이런 썩어빠진 자가 썩어빠진 붓으로 썩어 빠진 먹물을 찍어서 세상을 논단했으니 조선일보를 보면 썩는 냄새가 나서 도저히 읽을 맛이 나지 않는다. 주필이 아니라 개필이었다. 에이 퇴퇴…조선일보 물럿거라…이런 썩어빠진 짓들을 하고도 독배를 마시는 자가 없으니 세상은 너무도 많이 썩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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