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한가위만 같아라
진주성-한가위만 같아라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09.08 18:50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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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한가위만 같아라


잊어버린 옛 세월의 고달팠던 잔상들은 돌아다보면 그래도 또렷하다.

수양버들 늘어져서 꾀꼬리 울면 쑥버무리 버무리며 보릿고개를 넘었다. 산나물 데쳐내기를 몇 번이고 했어도 허기진 하루해는 유난히도 길기만 했다. 보리타작 뒤끝의 겉겨 타는 냄새가 마을 가득하게 뒤덮은 뒤에야 허리춤을 가까스로 늦추고 무논갈이에 누렁이를 앞세웠다. 이제는 기억의 저편이 되어 단편소설의 책갈피 속으로 몸을 숨겼지만 그렇게 멀지도 않은 세월인데도 가만히 턱 고이고 듣던 할머니의 옛이야기처럼 멀어져 갔다. 이제는 추억의 강에서 멱을 감고 돌아와 거울 앞에서 오늘을 바라본다.

하늘이 파랗게 높아지려고 햇살은 봄부터 꽃을 피우고 긴 한낮을 뜨겁게 달구었나 보다.

목이 쉬도록 뻐꾸기는 여름 내내 울어서 풋감을 익히고 발갛게 고추를 물들이려고 매미는 나뭇가지를 붙들고 목청껏 울었다.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혀 머루포도는 까맣게 영글었고 밤이슬에 젖으며 만월의 밤을 뜬눈으로 지새운 배꽃나무 가지에는 주렁주렁 황금배가 단내를 풍긴다. 뙤약볕 아래서 알몸으로 내맡긴 까닭을 진작부터 암 말 않더니 풀벌레 우는 소리에 미소를 짓는다.

천둥이 울어도 꿈쩍도 않던 들녘이 황금빛으로 일렁이고 부끄러울 이유도 없는 키가 큰 수수는 콩밭 속에서 띄엄띄엄 고개를 숙였다. 석류가 벌어지는 소리에 놀란 참깨 깍지는 등이 터지고 고구마넝쿨 밑에서는 이랑이 갈라진다. 입이 찢어져라 온 종일 웃어재끼던 해바라기도 철이 들었다. 제 좋아서 우쭐거리는 허수아비를 보고 고개를 못 들고 어쩔 줄을 모른다.

알밤 떨어지는 소리에 콩깍지가 벌어지고 누런 호박의 펑퍼짐한 엉덩이가 아름차게 커졌다고 대추는 수줍어서 볼을 붉히는데 송편 찌는 김 내음이 좋아서 코스모스는 일찌감치 길마중에 나섰다.

얼음골 사과가 영글었다는 소문이 뜬소문이 아니라고 일러주는 고추잠자리 날개소리에 거창사과도 함양사과도 서둘러서 볼을 붉히며 꽃단장을 했다.

실낱같은 초승달은 밤마다 손 모아 소원을 빌더니만 휘영청 둥근달로 중천에 높이 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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