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열며-사랑(愛)에 대하여
아침을열며-사랑(愛)에 대하여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09.11 17:59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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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
 

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사랑(愛)에 대하여


문득 내 지나온 삶을 전체적으로 한번 되돌아보니 무엇보다도 ‘두 여인’을 만나 ‘사랑’이라는 것을 하게 된 것이 내 삶의 거의 전부였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하나는 내 ‘아내’고 다른 하나는 ‘철학’이라는, 혹은 ‘진리’라는 여인이다.(참고로 독일어에는 모든 명사마다 다 성이 있는데, 철학도 진리도 다 여성이다.‘Die Philosophie’, ‘Die Wahrheit’ 프랑스어도 마찬가지다. ‘la philosophie’, ‘la vérité’)

사랑이라는 이 현상은 참으로 오묘해서 애틋하기가 이를 데 없다. 그것이 위대한 힘이 된다. 이것은 거의 존재의 원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2500년 전의 그리스 철학자 엠페도클레스는 이른바 만유의 ‘뿌리’인 4원소 즉 지, 수, 화, 풍의 ‘결합’의 원리로서 이 ‘사랑’(philia)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가 공식적인 효시가 된 이후, 현대의 저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에 이르기까지, 사랑은 철학의 단골 메뉴가 되기도 했다. (그 이전에 이것이 문학의 영원한 주제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니 이것에 대해 철학적으로 하고 싶은 말들을 펼쳐놓는다면 아마 열권의 책으로도 모자랄 것이다.

물론, 이것도 이미 상식이지만, ‘사랑’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이른바 ‘아가페’, ‘필리아’, ‘스토르게’, ‘에로스’다. 이것들에 관한 이론적인 ‘이러쿵저러쿵’도 아쉽지만 생략하자. 그래도 내 삶이 이 ‘사랑’이었으니, 이것에 대해 그래도 한 마디쯤은 해두고 싶다.

이른바 철학을 하는 사람에게 사랑이라고 하면 압도적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단연 예수 그리스도다.(“네 원수까지도 사랑하라”) 이 사랑이 거의 그분의 ‘트레이드 마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도 바울은 이른바 로마서에서 ‘믿음, 소망, 사랑, ... 그 중에서도 사랑이 첫째니...’라는 말로써 그 확인 도장을 꽝 찍어준다.

그런데, 저 공자가 이 사랑을 언급했다는 사실은 뜻밖에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논어}에 보면 공자도 여러 차례 이 ‘사랑’을 언급하고 있다.(남녀의 성애는 물론 아니다.) 공자의 그 언급들을 보면 ‘사랑’이라는 것이 공자의 가치들 중 하나라는 것은 너무나 분명해 보인다. 특히 그 유명한 ‘인’에 대해 그가 드물게 제공하는 설명 중의 하나가 이 ‘애인’(사람을 사랑함)임에야 더 시비할 여지가 없다. 사랑은 명백히 공자의 핵심 가치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 언급들에서 확실히 드러나지만 공자의 사랑은 무엇보다도 ‘사람’에 대한 사랑이었다. 특히 어떤 특정인에 대한 사랑뿐만 아니라 ‘사람 일반(衆)’에 대한 사랑이었다. 그가 이것을 어짊(仁)의 핵심으로 설명한 것은 예사롭지 않다. 그는 왜 하필 이런 말을 했을까? 우리는 그 이유 내지 배경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너무나도 당연한 가치가 사람의 세상에서는 그토록 드물기 때문인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면 사람의 아픔과 고통에 대해 사람들이 이토록 무심할 수가 없을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면 사람이 사람에 대해 이토록 모진 해약들을 기칠 수가 없는 것이다. 온갖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것’(能勿勞乎)이 사랑의 본질임을 공자는 적시하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사람들은 어떤가. 억울함을 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고통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위해, 작은 수고도 잘 하려고 하질 않는다. 모든 수고는 오로지 나 자신의 이익과 패거리의 이익에만 집중돼 있다. 심지어 저 수많은 ‘해악’들은 또 어떠한가. 사랑이 있다면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속일 수 있고 욕할 수 있고 때릴 수 있고 찌를 수 있고 죽일 수 있는가. 차마 그럴 수 없다. 그런데 세상에는 오히려 미움과 증오가, 그리고 혐오가 넘쳐난다.

공자의 이야기는 옛날이야길까? 아니다. 공자 때나 지금이나 한치도 달라진 것이 없다. 요즘 세상, 요즘 사람을 관찰해 보면, 사람에 대한,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는 어디에도 없다.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오직 ‘함부로’라는 한 마디로 집약된다. 함부로 말을 하고, 함부로 상처를 주고, 함부로 희롱을 하고, 함부로 사기를 치고, 함부로 폭행을 하고, 함부로 겁탈을 하고, 함부로 죽이기도 한다. 핵폭탄으로 위협을 가하는 것도 전쟁을 일으키는 것도 그저 예사다. 어떤 나라에서는 지참금이 적다고 신부를 불태워죽이기도 했단다. 어느 하루 이런 ‘함부로’가 뉴스를 장식하지 않는 날이 거의 없다. 거기에 사랑은 없다.

그러니 어쩔 것인가...세상 모든 사람이 공자 같은 군자가 될 수는 없고 또 될 리도 없겠지만, 그래도 우리가 인간에 대한, 세상에 대한 희망을 완전히 버릴 수야 없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그래도 누군가는 저 공자처럼 (그리고 저 예수처럼) “사람을 사랑하라!”고 외치기라도 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면 누군가의 귀는 그 말을 듣게 되지 않을까. 나도 그런 귀들을 위해, 저들의 제자로서, 저들의 저 신성한 발언에 볼륨이라도 좀 높여보고자 오늘도 나름의 방식으로, 글도 쓰고 강의도 하고 하면서, ‘수고’(勞)를 하고 있다. “사람을 사랑하자!” “우리는 그래도 저 짐승의 대열에 합류하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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