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청산리 대첩 나중소(羅仲昭)장군
진주성-청산리 대첩 나중소(羅仲昭)장군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09.21 18:25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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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사 연구실장
 

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사 연구실장-청산리 대첩 나중소(羅仲昭)장군


2016년 9월 국가보훈처는 이 달의 항일독립유공자로 나중소(1867~1828)장군을 선정해 각종 기념사업을 전개한다.
나중소 장군은 16세 때 무과에 급제해 대한제국 무관학교에서 수학한 천재로 조선왕조실록에 등재된 분이다.
대한제국 진위대 장교인 부위·정위로 재직 중 국비 장학생으로 일본에서 훈련을 받고 귀국했으나 갑자기 군대가 해산되자 만주로 망명해 대한군정서(북로군정서)소속으로 무장 투쟁을 전개했다.

나중소 장군은 1919년 3월 북간도 왕정현에서 서일 등과 함께 대종교인 중심으로 대한정의단 교관으로 초빙되어 수백 명의 독립군을 양성했다.

같은 해 10월 북로군정서로 개편되자 참모부장이 되고 사관양성소 교수부장으로 4백여 명의 독립군 무장대를 양성하고 백운평 과 천수평 전투에서 대승할 때 큰 공을 세웠다. 이 청산리 대첩은 김좌진의 북로군정서와 홍범도의 연합부대가 1920년 10월 21일부터 6일간 청산리 일대에서 10여 차례 전투한 공적을 말한다. 이 때 1300여명의 독립군 연합 부대는 일본군 연대장·대대장 2명을 포함한 1200여명을 사살한 대첩이다.

1922년 1月 만주 안도현 군인양성소 사령관이 되고 국내 진공작전 및 8월 독립군 단체들이 대한독립단을 재건하자 동참했고 1924년 3월 대한군정서가 재조직되자 서부부장 겸 참모장이 됐다.

1925년 3월 연안현에서 신민부가 조직되자 중앙집행위원회 참모부위원장에 임명되고 같은 해 9월 신민부·정의부 연합부대에서 간도 일원과 함경도 일원을 관장하는 서남로 향관이 되었다.

나장군은 안도현 군인양성소·대한독립군·대한군정서 재조직·신민부 조직 등에 참여했으며 1928년 신민부 지방 조직을 설립하다 돈화현 산중에서 순국했다.

나중소 장군은 유관순 열사와 같은 등급인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는데 같은 등급의 훈장을 받은 나주 나씨는 모두 12명이다.

경남 함안군 군북 3.1운동 때 현장 순국한 나수범 선생이 있고 동경 2.8독립선언을 주도한 나용균(羅容均)선생은 광복후 제헌의원·보사부장관·국회부의장을 역임했다. 나장헌·나창헌 형제는 상해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국장 등을 역임하고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나석주 선생은 학생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유명하고 나동규·나응환·나태섭 선생 등이 있고 민족대표 33인으로 활약한 나인협·나용환 선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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