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장군의 겨울, ‘마지막 마음’
칼럼-장군의 겨울, ‘마지막 마음’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09.22 18:16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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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주/국학원 상임고문ㆍ한민족 역사문화공원 공원장
 

장영주/국학원 상임고문ㆍ한민족 역사문화공원 공원장-장군의 겨울, ‘마지막 마음’


얼마 전 여야 3당 대표와 국회의장이 미국 의회와 조야를 방문하고 돌아왔다. 하나같이 의미 있는 방문이었다고 자찬하나 사드 배치에 관한 여야의 입장은 확연히 다르다. 미국의회 지도자, 정치인들과 한 자리에서 듣고 나눈 이야기가 그들과 악수한 손의 온기를 잊기도 전에 이토록 기억이 다를 수 있을까? 각자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온 것이다.

마치 임진왜란 직전의 정사 황윤길과 부사 김성일의 서로 다른 보고로 선조와 조선 조정을 혼란에 빠트린 것과 같다. 결국, 조선은 ‘믿고 싶은 것만을 믿기’로 했다. ‘오랑캐 일본은 쳐들어오지 못할 것이며, 혹여 그렇다 해도 천자국인 명나라가 우리를 보호해 줄 것이다’라는 안일하고 무책임한 결정을 내렸다. 나라는 곧 처참한 아비규환의 쑥대밭이 되었다. 의도적으로 일본은 쳐들어오지 못한다고 보고한 김성일은 부랴부랴 의병을 모아 전투에 임하는 기개를 보였으나 병사하고 만다. 아무것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1598년 11월 19일(음력) 남해 설천면 노량 관음포 앞바다에서 조명(朝明) 연합 수군과 일본 수군이 생사를 건 건곤일척의 사투를 벌인다. 그날 자정, 순천 바다를 막고 고니시를 압박하던 이순신 장군은 기함에서 천제를 지낸다. “하늘이시어, 이 원수를 갚는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급히 수군을 물려 노량으로 진을 옮긴다. 02시경 전투가 시작된다. 노량의 좁은 물목을 빠져나오면 관음포 앞바다로 부산과 일본으로 이어지는 넓은 대양이 된다. 그곳을 틀어막지 못한다면 일본 수군은 안전하게 일본으로 생환하게 된다. 관음포는 멀리서 보면 수로가 뚫려 있는 듯이 보이지만 정작 어망처럼 막혀 있는 곳이다. 장군은 그대로 일본 수군을 몰아넣을 전략으로 마지막 동귀어진(同歸於塵)의 전투로 몰아가고 있었다. 상대는 일본 수군에서도 용맹하기로 유명한 ‘시미즈 수군’이다. 그쪽이 기록한 노량전투의 대강이다.

“적의 대장선이 우리(일본 시미즈 수군 전함)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갑옷을 벗은 노인 한 명이 북을 치며 우리를 노려보며 돌진해 왔다. 급히 저격수들이 모여 그가 누구인지 의견을 나누었다. 혹시 이순신이 아닐까? 우리는 그를 향해 일제히 사격했다. 그가 뱃전에 쓰러졌다”

오전 9시경, 이순신 장군은 몇 마디 유언하신다. "싸움이 급하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 등의 유언이 공식적으로 전해온다. 당시 의병장 안방준의 '은봉야사별록'에는 "나는 도를 다하기 위해 총을 맞은 것이다."라는 장군의 또 다른 유언이 기록되어 있다. 영국의 넬슨 제독이 포탄에 맞고도 애인을 잘 부탁한다는 등 이것저것 장시간 유언한 것과는 달리 우리의 장군께서는 곧 숨을 거두신다. 전해 봄부터 선조의 의심으로 삭탈 당하고, 고문받고, 예기치 못한 어머니의 별세와 상도 못 치른 백의종군, 목숨처럼 아끼고 길러온 조선 수군의 칠천량 전몰, 아무것도 없는 삼도수군통제사의 제수, 일본 수군을 따돌리기 위한 피함 중에 걸린 중병, 부사령관 배설의 도주, 죽음보다 더 곤고했던 명량해전, 한 달 뒤 셋째 아들의 전사, 한밤중에 피를 한 됫박이나 쏟고, 영일 없는 수군 재건과 크고 작은 전투 등으로 마음의 고통과 육체적 격무가 53세 노장의 체력을 소진해왔다.

꼭 두 달 전인 9월 18일, 장군보다 7년 연상인 임진왜란의 원흉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유언하고 죽는다. “질풍노도의 시간이여. 꿈속의 꿈이런가” 그가 꿈도 아닌, 꿈속의 꿈을 꾼 탓에 조선인 약 300만 명이 죽고 다치고, 나라는 약해지다가 멸망하고 분단되어 지금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이순신 장군이 돌아가신 노량의 관음포에는 첨망대와 이락사가 있어 그 얼을 기리고 있다. 국학원 부설 충무공연구소에서는 매년 그날을 기해 관음포 앞바다에 모여 덧없이 죽어간 조선, 명, 일 삼국의 장졸들을 위하여 마음을 올리고 있다. 그곳 이락사와 첨망대 사이의 소나무 숲과 동백 숲은 유난히도 무성하다. 누가 왜 어떻게 죽어도 꽃 피고, 새 울고, 강물은 흘러갈 것이다. 그러나 그가 누구든지 죽는 찰나의 그 마음만은 인류의 DNA로 이어갈 것이다. 죽는 순간의 마음은 살아생전 켜켜이 쌓인 의식의 발로임에 틀림이 없다. 결국, 평소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가 개인과 나라와 인류 생존의 질을 결정할 것이다. 그것이 인연이고 업이다. 그것들은 좋든 나쁘든, 알고 있든 모르고 있든, 만들어질 뿐이다.

중요한 것은 나라의 운명이 마지막 전투를 향하는지도 모르고 있다는 위험한 진실이다. 우리는 정녕 제2의 6.25동란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인가. 모두가 북핵이고 미사일이고, 지진이고 잊고 오직 대권에 집중하고 있다. 이것이 대한민국 정치판의 몫인가. 그러나 어둡든 밝든 그 책임과 결과는 틀림없이 국민의 몫이다. 국민 각자의 철저한 각오와 단결과 준비로 명량과 같은 희망을 길어 올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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