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가을의 문턱에서
진주성-가을의 문턱에서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09.22 18:16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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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가을의 문턱에서


유난깨나 떨던 폭염이 지난여름을 돌아다본다면 참으로 민망스러울 게다. 어쩌자고 여름 내내 그렇게 들볶았는지 생각하면 쑥스럽고 겸연쩍어 산천초목을 볼 낯이 없을 게고 더구나 무던히도 참으며 영글어 가는 오곡백과 앞에서는 서먹하고 멋쩍을 게다. 망나니짓도 유분수지 체온을 웃도는 나날의 연속에다 전에 않던 40도를 넘보며 분수를 잊고 광란을 부렸으니 말이다. 밭이랑의 푸성귀와 과수의 이파리들이 데친 듯이 시들어 가는 모습을 보고 어쩔 요량이었는지는 몰라도 고랭지가 아니라도 텃밭의 여름배추도 노란 속잎을 알차게 키워 왔고 올벼 늦벼 할 것 없이 들판마다 황금물결 일렁이고 목이 더 길어진 코스모스는 색색으로 피어나서 가을마중 하느라고 길섶마다 방싯거린다. 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감사할 일인가. 삼라만상을 달달 볶아서 태울 것처럼 작열하던 폭염 속에서도 자연의 끈질긴 생명력이 경이롭고 신비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했다.

동지섣달 ‘빽’만 믿고 버티기는 했어도 힘겹던 여름이었다. 어쩌다 켜던 에어컨이 꺼질 날이 없었고 선풍기는 날 새는 줄 모르고 돌아야 했다. 이러다가 ‘블랙아웃’이라도 일어난다면 어쩌나 하고 겁도 났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장마 덕이라도 보려했던 기대는 가뭄으로 이어져 저수지는 바닥까지 들내며 거북등같이 갈라졌다. 태풍은 온다는 소식조차 없었고 소나기는 먹구름 속에서 기웃거리기만 하다말았다. 이러다가 마실 물조차 없어지지나 않을까도 걱정이 되었고 타들어가는 농작물을 볼 때마다 재난이 덮치려는 것은 아닐까하고 가슴을 졸였다. 60년대를 살아온 이들이라면 가뭄으로 인한 흉년의 타격이 얼마나 극심했으며 이어지는 후유증 또한 얼마나 컸던가를 기억할 것이다. 시대가 바뀐 지금이야 ‘엥겔지수’가 낮아져 허리띠를 졸라맬 것까지야 없겠지만 천만대행으로 들녘도 풍년이고 과일도 풍년이다. 이웃집 담장너머에서 알이 차서 빨개진 석류도 반갑고 볼 살이 붉게 오른 사과도 대견스럽고 노랗게 물들은 들녘이 참으로 고맙다. 그러고 보면 온갖 것을 구실로 삼는 우리들이야말로 참으로 나약한 존재인가보다.

이제는 잊어도 좋을 지난날을 뒤로하고 코스모스 하늘하늘 피어 있는 길, 기다림의 들국화가 향기로운 길, 그리움이 산들산들 불어오는 길, 끝 모르는 가을 길을 나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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