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열며-받듦(敬)에 대하여
아침을열며-받듦(敬)에 대하여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09.25 18:34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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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
 

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받듦(敬)에 대하여


맨 처음의 연유는 어땠는지,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기억에 확실히 남아 있지는 않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나는 우리 사회의 ‘함부로’라는 현상을 깊이 우려하는 발언을 자주 해오고 있다. 생각도 말도 행동도 그리고 삶도...사람들은 너무나 함부로 하고 있다. 일도 함부로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이 사람을’ 너무나 함부로 대하고 있다. 그것이 총체적인 ‘문제’의 핵심 근원이건만, 사람들은 이것이 문제인 줄도 잘 모른 채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고 있다.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니다. 문제의 인식이 없다면 그 문제의 해결은 난망이다.

내가 공자를 좋아하는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무엇보다도 이 양반은 나하고 가치관이 참 비슷하다.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그 중 하나다. 응? 공자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나? 물론 이런 말을 명시적으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굳이 찾아보자면 “小人不知天命,而不畏也, 狎大人, 侮聖人之言”(소인은 천명을 알지 못해 두려워하지도 않고 훌륭한 사람도 함부로 대하며 성인의 말씀도 업신여긴다)라는 말이 엇비슷하게 그것에 해당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가 공자에게 동류의식을 느끼는 것은 이 ‘함부로’의 대척점에 있는 가치를 그가 분명히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경’(敬)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보통 ‘공경’으로, 특히 어른에 대한 공경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그런 의미만으로는 공자의 뜻을 제대로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이 말은 비단 윗사람뿐만 아니라 사람 자체에 대해 그리고 만사에 대해 사람이 마땅히 지녀야 할 어떤 받드는 태도 내지 자세를 의미한다. ‘삼가다, 조심하다, 절제하다, 정중하다...요컨대 함부로 하지 않는다’, 그게 이 말의 핵심 의미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글자를 일단 ‘받듦’이라고 번역한다. 이 말(敬)을 최고의 가치로 평생 받들었다는 내 고향 선배 퇴계 이황도 크게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을 거라고 나는 기대한다.

‘경’에 관련된 그의 말들을 귀담아 들어보면 우리는 적어도 몇 가지를 알 수가 있다. 그는 일에 임하는(敬事, 敬其事) 자세로서, 그리고 ‘행함’(行)의 자세로서, ‘수기’(脩己)의 자세로서, 윗사람을 섬기는(事上) 태도로서, 사귐(與人交)의 태도로서, 부모를 섬기는(事父母) 효(孝)의 태도로서, 위례(爲禮)의 태도로서, 이 ‘敬’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지 못한 ‘不敬’[함부로]을 ‘문제’로서 지적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자의 모든 발언들이 그렇지만, 그는 그 말들로써 어떤 ‘훌륭한 인간’[궁극적으로는 ‘군자’]을 기대한다. 어떤 ‘훌륭한 인간관계’를 기대한다, 어떤 훌륭한, 사람이 살만한, 그런 나라 내지 세상을 기대한다. 그런데! 현실을 전혀 그렇지가 못한 것이다. 공자 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에게 ‘받듦’이라는 태도는 참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받듦’에는 본질적으로 ‘위’와 ‘아래’가 있다. 받듦이란 그 내용이, 그 대상이, 그것이 일이든 사람이든, 그것을 ‘나’보다 ‘위’에 두는 태도를 말한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의 태도를 보면 대부분 모든 것이 ‘나’보다 ‘아래’에 놓여 있다. 거기에 ‘받듦’은 없다. 그런 관계설정에서 저 모든 ‘함부로’가, ‘되는대로’가, ‘적당 적당히’가, ‘닥치는 대로’가, ‘마구잡이로’가, 나오는 것이다. 그러니 일이 제대로 될 턱이 없고 인간관계가 원만할 턱이 없는 것이다.

나는 강의 시간에 이른바 ‘선진사회’와 ‘후진사회’를 비교하면서 그 기준의 하나로서 타자에 대한 ‘존중’(respect)을 거듭거듭 강조해 왔다. 그 ‘존중’이란 것도 실은 공자의 이 ‘敬’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자기에 대한 겸손, 타자에 대한 인정, 그것이 이 ‘敬’의 바탕에 깔려 있다. 일에 대한 성실도 깔려 있다. 단언컨대, ‘敬’, ‘받듦’, 이 글자 하나만 제대로 실천되어도 아마, 그 순간 이 지상의 모든 ‘함부로’가 사라지고, 따라서 모든 불법주차도, 교통사고도, 모든 폭력도, 모든 범죄도 다 사라질 것이다. 세월호도 더 이상 침몰하지 않을 것이며, 모든 엉터리 정책들로 인한 국고의 낭비도 없어질 것이다. 숨 막히는 미세먼지도 사라질 것이다. 비록 천국이나 극락은 아닐지라도, 그 비슷한 어떤 세상이 실현될 것이다. 살만한 세상, 인간 같은 인간이 모여 사는 그런 세상이. 바로 여기에. 이 땅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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