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버드나무와 아스피린
칼럼-버드나무와 아스피린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09.28 19:15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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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주/환경부 환경교육홍보단·경남환경연구원장
 

류재주/환경부 환경교육홍보단·경남환경연구원장-버드나무와 아스피린


인류가 개발한 많은 약 중 100년이 넘도록 사용되는 것은 거의 없지만 1899년에 출시된 ‘아스피린’은 지금도 전 세계에서 하루에 약 200억 개가 팔린다고 한다. 아스피린은 버드나무에서 추출한‘살리실산’을 이용해서 만든 것으로 1899년 바이엘 제약회사에 근무하던 독일인 화학자 펠릭스 호프만이 아버지의 신경통 증상을 완화시키기 위해 생각해 낸 약이었다.

우리는 세계 최고의 약효를 자랑하는 버드나무를 지천에서 대하면서도, 그리고 동의보감에서도 효능을 입증하고 있는 그 버드나무로 약제를 만들 생각은 하지 못하고 천대를 하는 사이, 독일은 버드나무 잎에서 아스피린을 만들어 전 세계에 판매하여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우리나라 냇가나 마을 어귀마다 우리 민족과 함께 한 버드나무. 그래서 버드나무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고향나무라고도 한다. 그 버드나무가 독일 바이엘사의 최고 효자상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바이엘사는 버드나무 잎의 추출물로 아스피린을 개발했는데, 세계 각처에서 생산되는 버드나무 잎보다 한국산 수양버들에서 짜낸 원료가 약효가 가장 좋아 한국에서 버드나무 잎을 수입하여 아스피린을 생산한 약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버드나무의 효능을 보면 1571년 조선 훈련원 별과시험 중 말에서 떨어진 이순신은 버드나무 껍질을 벗겨 다친 다리를 싸매고 시험과정을 마친 유명한 일화에서도 보듯이 버드나무 가지의 껍질에는 현대의 의약품인‘아스피린’의 주성분인‘살리신산’과 ‘글루코사민’이 소염, 관절염 등의 약제에 이용되고 있다. 버들가지의 약효로는 중풍·거담·종기·소염에, 잎과 껍질은 지혈·감기·이뇨·해열·황달·치통에 효능이 있다. 즉 버드나무의 약용능력은 만병통치약에 가깝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는 환자들의 고통을 경감시켜주고자 버드나무 잎을 씹게 했다고 하며, 고대 중국에서는 치통을 겪을 때 작은 버드나무 가지로 이 사이를 문질렀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이쑤시개를 뜻하는 일본어 ‘요지’(楊枝)는 버드나무의 가지라는 말이다.

양치질은 ‘양지와 질’에서 온 말로 한자로 버드나무 가지를 뜻하는 楊枝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또한 일본의 설 명절날이나 장례, 제사 때 신에게 올리는 젓가락은 상하가 뾰족한 양구의 젓가락을 사용한다. 이 젓가락이 이런 날에 사용되는 것은 신인공식(神人共食) 때문이다. 한쪽으로는 신이 먹고 다른 한쪽으로는 자신이 음식을 먹는다는 의미가 있다. 이때 사용되는 젓가락은 버드나무로 만들어진다. 버드나무는 속살이 희기 때문에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청정한 기운을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수나라 양제가 양자강 대운하를 만들면서 백성들에게 상을 주면서 까지 버드나무를 많이 심도록 권장한 버드나무가 수양버들이다. 고려 태조 왕건이 전남 나주 지방을 지날 때 목이 말라 우물가에서 물을 청했더니 묘령의 아가씨가 바가지에 나뭇잎을 띄워 줬다던 그 유명한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나뭇잎도 실은 버들잎이다. 버들잎의 아스피린 성분으로 피로를 풀어 주기도 하고, 물을 갈아 마실 때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뜻에서 버들잎을 띄워 자신의 총명함을 어필했던 그 아가씨는 훗날 왕비가 되었다는 일화이다.

봄의 전령사 갯버들, 수명이 길어 정자나무와 천연기념물로도 지정이 되는 위풍당당한 왕버들, 비틀어 용트림하듯 아래로 꾸불꾸불 가지를 뻗는 용버들, 수양버들, 능수버들, 키버들, 산버들 등 우리나라에는 50여 가지의 버드나무가 자생하고 있다. 보통의 나무뿌리는 물속같이 공기가 부족한 곳에서는 잘 견디지 못하는데, 버드나무는 예외다. 버드나무는 강기슭에서 뿌리의 일부가 물에 씻기면서도 끄떡없이 잘 살 수 있으며, 가지를 꺾어 물가에 꽂아만 두어도 쉽게 뿌리를 내린다. 버드나무 가지를 유지(柳枝), 수염뿌리를 유근(柳根),유백피(柳白皮), 잎을 유엽(柳葉), 종자를 유서(柳絮)라고 부르며 모두 약용했다. 예부터 이처럼 만병통치약과 같이 유용한 버드나무를 우리는 모두 베어버리고, 독일은 전 세계에 팔아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물의 수량을 조절하고 나쁜 독성을 정화시키는 작용의 능력으로 냇가와 우물가에 심어왔던 그 흔한 버드나무가 이제는 우리 주변에 잘 보이지 않는다. 자연을 벗 삼아 노래하기 좋아했던 선조들의 한시에도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버드나무이다. 약이 되고 시가 되고 노래로서 그늘이 되어 준 고마운 버드나무가 이제는 도시화에 의한 빌딩 숲에 가려져 찾아보기 힘들다. 이 참에 남강 가에 버들가지를 꺾어 꽂아놓고 남강의 정화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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