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성범죄 피해자들은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기고-성범죄 피해자들은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09.28 19:15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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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화/김해서부경찰서 장유지구대 순경
 

이동화/김해서부경찰서 장유지구대 순경-성범죄 피해자들은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트라우마’라는 단어가 있다. 좀 더 정확한 용어는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이다. 단어의 의미는 전쟁, 질병, 사고 등과 같은 큰 재난을 당한 사람이 마음에 가진 상처이다. 이것은 오랫동안 무의식 속에 남아서 사람의 행동과 의사결정에 영향을 준다.

PTSD의 존재는 1차 세계대전에서 돌아온 병사들이 보여준 증상을 통해 알려지게 되었다. 1차 세계대전은 이전의 전쟁과는 전혀 다른 가공할 전쟁이었다. 이전의 전쟁이란 전투 몇 차례를 겪고 나면 끝났고 병사 개인이 위기에 처하는 시간이 몇 시간을 넘기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러나 산업혁명을 통해 고도로 발전된 군사보급체계는 전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병사들은 죽을지도 모른다는 전투 스트레스 속에서 몇 개월, 혹은 몇 년을 지내야 했다.

전쟁터에서 지속적인 공포에 시달린 병사들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무력감에 사로잡히고, 전멸될지도 모른다는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동료들이 죽고 다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군인들이 감정마비의 상태에 걸리게 되었다.

“전쟁에서 적의 포화로 전사할 가능성보다 정신적 사상자(psychiatric casualty)가 될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리처드 게이브리얼(심리학자)

전쟁이 끝난 후에도 이러한 외상 증세가 병사들에게서 사라지지 않고 있음이 전후 여러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발견되었다. 원래 PTSD는 공감과 대화를 통한 치료 없이 방치하면 사라지지 않는다.

연구가 오랫동안 이어지면서 1980년대에 이르러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었다. PTSD는 전투에서의 결과로 생기는 것 못지않게 여러 범죄에 의해서도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성범죄이다. 강간, 가정폭력 생존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심리적 증후군이 전쟁 생존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증후군과 같다는 점이 명확하게 밝혀졌다.

“충격의 요인, 죽음의 위협, 유괴범들의 계획적인 원한, 이 모든 것이 사건에 심각한 결과를 가져왔다”-J.P 윌슨

강간으로 인해 야기된 심리적 상처는 신체에 입은 상해를 훨씬 능가한다. 강간 트라우마는 전투 트라우마와는 다르게 죽거나 다칠 거라는 두려움과는 별 관련이 없다. 여기서 훨씬 더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인간성의 파괴에 따르는 무력감과 공포다.

그러나 트라우마의 치유에도 희망적인 사례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의무병들이다. 의무병은 부상당한 병사를 치료하는 전장의 의사다.

“의무병들은 전통적으로 전투 중에 심리적 안정을 잃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로렌스 빈욘 <치유자들, 그들의 용기는 분노에서 나오지 않았다>

의무병, 혹은 위생병들은 가공할 전쟁에서 수년간 전투를 벌였다. 그들은 죽거나 부상당할 위험은 다른 병사들과 똑같거나 더 큰데도 불구하고 정신과적 증상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의무병뿐만이 아니라 범죄상황 후의 트라우마 극복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사회성이 매우 높고, 사려적인 대처양식을 지니며, 운명을 자기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고 강하게 지각하는 사람들은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내적통제소재(Internal locus of control)’라고 부른다. 요는 사회성의 추구다.

성범죄를 겪은 사람들이 사회봉사나 종교활동을 통해서 마음을 회복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공동체의 회복을 통해 사람은 마음의 건강을 지켜나가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우리 사이에서 이루어진 최초의 인간적인 몸짓이었다. 그 순간은 죽지 않은 자들이 서서히 포로에서 인간으로 변화하기 시작한 첫날이었다”-프레모 레비(나치스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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