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열며-가을, ‘운주사’를 읽다
아침을열며-가을, ‘운주사’를 읽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10.12 18:23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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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강영/소설가-가을, ‘운주사’를 읽다


한생 다 비우고 털어내서/ 세상에서 제일 낮은/ 돌사람 계시나니 거기 눈군가의/ 속울음, 속속들이 다 들어주실/ 평생을 눈비 맞고 계시는/

진주에 사시는 박노정 선생님의 시집 <운주사> 91페이지에 실려 있는 시 ‘운주사’전문이다. 찬란한 가을 오후 늦으막에 운주사에 도착하고 싶다. 는개비가 시나므로 나를 적셔도 참 좋겠다. 그러면 어느 이름 없는 절집에서 공부하던 애인이 주말을 틈타 찾아간 나를 업어주며 사하촌으로 내려오던 옛일이 떠오르겠지. 그리고 맑은 눈물. 이제쯤 대머리가 된 남편이 내 추억에 심술을 부려봤자 뭐 달라질 게 뭔가. 추억하는 내가 더 그 추억이 낯설진데...장성한 자식들이야 내 추억과 늙으가는 나를 진심으로 귀여워해주겠거니.

어느새 깊어가는 가을에 내 복 많음에 겨워 진정 행복하다. “천복이 있으나 구름이 유하고” 탁발승이 내가 올린 시주에 툭 던져준 말씀인데. 나이 오십이 되도록 그 ‘천복’이 하늘에서 내려준 복이려니 하고 살았다. 이제나 저제나 천복이 내게 왕림하려나, 기다린 무식한 세월. 환갑이 낼 모래 하는 근래에 들어서야 그것이 천 개의 복을 말한다고 제대로 말귀를 알아들었다. 복이 천 개라...생각만 해도 느긋해지던 것이다. 줄잡아 한 달에 한 개씩만 맞이해도 백 년은 울거먹을 복이 아닌가. 까짓거 백 년은 버틸 수 있겄다. 생각만 해도 신이 났던 것이다.

내 여태는 천 개의 복이 하늘복인 줄 알고 제대로 찾아먹지 못했으니 지금부터 치면 백 오십 년은 거뜬하겠다. 그래서 그랬든지 그 즈음부터 내 인생이 거미 똥꼬의 거미줄처럼 느리지만 빠른 성장을 거듭한 것 같다. 박노정 선생님을 스승으로 모시게 된 것이 천복 중의 한 개이다. 그 선생님이 시를 쓰시는 게 그 한 개의 복 중의 복이니 이건 따로 개수를 치지 않아야 한다. 그 분이 시집을 내게 주시고 고이 모셔 두었다가(?) 이 가을 해저물녁에 읽게 된 것도, 일사천리로 표지부터 백여 편의 시들과 표사까지 읽어낸 것도,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나중에 한 자 한 자 행간까지 새로이 음미하며 읽어야지 하는 아쉬움도,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마저 뜨거워지는 천상병·이오덕·권정생·김열규·김장하·노무현·김종철·김진숙...그 빛나는 영혼들을 다시 만나는 이 귀하고 많은 복들 또한 따로 개수로 치지 않아도 되니 천 개의 복을 다 찾아먹으려면 와우, 아름다운 내 인생이여! 오지도 않는 하늘복보다 낱낱히 내 깜냥대로 내 나름의 계산대로 찾아먹는 천 개의 내 복이여 귀하고 귀하다. 아름다운 시인들이여 님들 덕분에 이 가을 내 복이 맑은 가을밤 별빛처럼 찬란합니다.

달빛이 없어도/ 은하수의 뿌연 빛만으로도/ 사랑에 굶주려 본 녀석은/ 목적지를 찾아낸다고 한다/ 말똥구리, 똥 경단을 굴리며/ 끝끝내 집을 찾아 나선다/ 나와는 격이 다르다/ 47페이지에 있는 ‘격’의 전문이다. 시인 덕분에 말동구리의 격이 시인의 격보다 고급이 되었다. 그래서, 소설쓰는 아줌마의 격도 덩달아 말똥구리에게 몸 낮춰서 그의 격을 인정하게 한다. 그리고 겸허히 배운다. 끝내, 기어이 내 집을 찾으리라. 화려하지 않아도 좋다. 크지 않아도 좋다. 찾는 이 없어도 좋다. 살아 있다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 한 없는 감사와 복에 겨운 내 집을 찾으리!!!

시인이 있어 신들은 더욱 영험이 있게 되고, 말똥구리마저 본래의 위대함을 확보한다. 내 비로소 겸손이 무엇인지 아주 쬐끔 알게 되던 것이다. 겸손함은 바로 감사하는 마음인 것이다. 또한 감사함은 행복의 잣대이다.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 이미 부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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