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태안 박씨들의 항일공적
진주성-태안 박씨들의 항일공적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10.19 18:42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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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사 연구실장
 

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사 연구실장-태안 박씨들의 항일공적


경남 진주시 내동(나동)면 삼계리 일원에 가보면 태안 박씨들의 거주지 또는 묘소가 두루 퍼져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태안 박씨의 원시조는 박혁거세(신라 태조)이며 제1세는 고려 때 상서좌복야에 오르고 태안부원군으로 봉함받고 혜문(惠文公)시호를 받으신 원의(元義)라고 기록됐다.

태안 박씨가 진주에 정착하게 때는 15세손 경광(慶光)·17세손 태무(泰茂)의 묘소가 내동면 일원에 설치된 때로 추정된다.

서기 1907년 3월 국채보상 경남회·진주여성보상회 등이 조직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정3품 통정대부 비서원승 벼슬을 지낸 박주형(朴周衡) 박동형(朴東衡)형제가 53원을 기부함으로 본격화되었다.

박주형의 세 아들 박재호(朴在鎬)·박재표(朴在杓)·박재수(朴在秀)등이 동참해 성금을 내고 박동형의 아들 박재연(朴在淵)도 동참하게 된다.

박재호(1869~1925)는 진주여고 진주고 설립당시 수 천 만원에 해당되는 금전과 200석의 토지를 기부하고 일신재단 기성회 회장으로 봉사하게 된다. 또 고미술품을 진주고와 서울대학교 박물관에 기증했다.

박재호의 아들 박규석(朴奎錫)은 남해 노량리에 소재한 충렬사를 중건할 때 후원위원·진주성 창렬사를 중건할 때 역시 많은 금전을 기부했다.

박재표(1886~1951)는 진주고 진주여고 설립 당시 간사로 봉사하고 진주청년회 회장(1920~1926)·신간회 진주지회장(1927~1930)으로서 애국계몽 운동을 전개했다. 또 남해군 소재 충렬사를 중건할 때 봉사했다. 진주시 평안동의 자신의 땅을 축구운동장으로 청소년들에게 내어줌으로서 뒤에 축구진주의 명성을 얻는데 큰 역할을 했다.

박재수(1895~1929)는 진주3.1운동에 동참하고 경남유림대회를 개최해 항일운동을 전개하려다 체포되어 8개월간 옥고를 치른 공적이 인정돼 대통령표창이 추서(1993년)됐다.

박재호의 아들 박두석은 부산일보 주필. 부산대학교 교수를 역임하고 박재수의 아들 박인석은 부산대 상대 학장·교수를 역임했다.

박씨 종손 박재순·사위·사돈 등도 국채보상운동에 동참하고 후손 박문석은 진주고 설립기성회 평의원과 창렬사 중건위원으로 기부금을 냈다.

증손자 박원지 역시 진주고 재학중 항일운동으로 2년간 옥고를 치렀다.

박주형-박재호-박규석 3대를 이어 직계손 박원배는 한화그룹 사장·부회장을 역임했다.

태안 박씨들의 민족사랑과 자신들의 돈. 재산. 기능을 남을 위해 그리고 조국을 위해 크게 봉사했기 때문에 후손들이 빛을 발하고 있다.

태안 박씨들의 특이한 활약상이 연구대상이 되어 학술 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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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9 00:45:13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