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경남 여(余)씨 항일 및 기타 활동
진주성-경남 여(余)씨 항일 및 기타 활동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10.26 18:27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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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사 연구실장
 

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사 연구실장-경남 여(余)씨 항일 및 기타 활동


의령 여씨의 시조는 송나라 여선재(余善才)이고 1세 여현경(余玄景)은 문과 급제하고 3세 여직은 검교장군·여흥렬과 여원경은 절도사를 지내고 여건은 관찰사를 역임했다. 세종 때 사간원 정언 여효은이 있고 조선시대 과거급제자 3명이 있다. 현재 남해·사천·하동지역 국회의원 여상규가 있다.

일제강점기에 항일독립운동에 앞장서고 정부포상이 추서된 항일투사들을 찾아보면 의령군 칠곡면 3.1운동을 지도하다 징역 1년형이 언도된 이들이 있다.

여세병(余世炳)·여찬엽(余燦燁)·여익환(余益煥)이며 여세병·여찬엽은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항일투쟁을 했으나 자료 부족 또는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순절, 순국해 미 포상되거나 군자금 제공의 경우 비밀로 전달되기 때문에 미 포상되는 경우도 많으므로 미포상자라고 항일독립운동을 안했다고 말할 수 없다.
하동군 하동읍 북서쪽 5리에 가보면 화심리가 있고 만지배가 유명하다.

여재규(余宰奎)의 하동군사(河東郡史)319면·434면 등에 보면 1930년경 하동군에는 여씨 233가구가 살고 있다고 했으나 지금은 대도시로 이주해 많이 줄었다.

하동군 전역에서 3대 부호에 드는 여종엽(余琮燁)·여경엽(余璟燁) 형제의 활동상을 보면 놀랍고 감탄이 나온다.

여종엽(1886~1935)은 명치대 졸업·통덕랑벼슬이 제수되고 은행지점장과 의원을 역임했다. 1907년 2월 대구에서 시작해 담배를 3개월 끊고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하자는 운동에 앞장서서 81원을 기부했다. 1925년 항일계몽운동의 산실인 하동청년회관을 신축할 때 발기인 으뜸으로 활동했다. 남해군 노량리 소재 충렬사(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가묘)를 중건할 때 후원위원으로 크게 기부하고 일신여고(진주고·진주여고)건립할 때 2000원을 기부했다. 그 외 군지 발간비·하동군내 경비전화 가설비 등을 기부했다.

여종엽의 아우 여경엽(1890~1969)은 참봉으로서 한일합방 반대 성명서를 발표하고 일경의 엄중한 조사를 받았다. 이원열 등과 대한협회 평의원으로 활동하고 남일물산 사장(1933년)으로 군자금을 은밀히 임정에 송금했다. 민족교육을 위해 하동군 학무위원을 역임하고 하동육영회 이사장으로 하동농업학교. 보통학교. 하동중학교 위해 기부했다. 1907년 5월 6월 사이 친인척들에게 국채보상운동에 동참하도록 독려해 여득엽·여봉문·여태상·여상엽·여봉기·여봉환·여동범·여수규·여병규·여언규·여흥엽·여규엽·여세엽·여영규 등이 보상운동에 동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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