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 사랑, 죽어서 상술
살아서 사랑, 죽어서 상술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12.27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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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완석/한국국제대학교
물리치료학과 교수
르누아르전, 렘브란트전, 클림트전, 고흐전, 그리고 최근에는 모네에서 워홀까지 등등 한 해에도 수 없는 미술 전시회가 열린다. 미술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도 여간 부지런하지 않으면 모두 찾아다니기 힘들 정도다.

책을 구입해 놓고 읽는 게으름에 이런저런 핑계로 파스텔의 부드러움과 따뜻함으로 가득했을 르누아르 전시회는 보기 좋게 놓치고 말았다. 1년에 한 번 뿐인 유럽행 비행기를 놓친 기분이었다. 줄타기나 쟁반돌리기의 달인은 단연 김병만일지 모르나 달빛과 태양빛을 요리조리 다루는 솜씨는 렘브란트를 따라올 자가 없을 것인즉, 호기심을 안고 찾아간 그의 작품전에 렘브란트는 거의 없고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바로크 그림들로 가득했다. 으앙 실망이야! 나의 소망일지 모르나 '겔데르와 렘브란트 전'으로 녹색물결 출렁이는 한여름을 누렇게 물들이고 '렘브란트와 다빈치 전'으로 빚어지는 빛과 그림자놀이가 개기일식보다 즐거울 테지만 전시회는 나의 기대를 비켜가기 일쑤다.

오스트리아 빈의 허름한 골목을 거닐 때였다. '클림트, 에곤실레'간판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일행들을 몰고 가서 무조건 표를 샀다. 점점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꼭대기층 마지막 방에 희망을 걸었건만, 헐~~ 제대로 낚였다. 에곤실레와 클림트의 몇몇 습작, 그리고 이름 모를 조형과 전시품으로 가득했고 내가 찾는 것들은 모두 1층 가게에 예쁘게 포장되어 있었다. 고흐 한번 들어본 적 있다고 찾아간 서울의 H 미술관. 루브르박물관에서 '모나리자'를 볼 때처럼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의 관객은 사탕조각에 달려든 개미떼와 같았다. 다른 작품들은 홀대를 받아 훌쩍훌쩍 거리고 있다. 모네의 백내장의 아픔을 함께 느껴볼까 워홀 공장의 상품을 눈요기해볼까. 이 전시회 역시 연꽃 그림 한 점과 판화 한 작품 외에 다른 그림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모네와 워홀 작품에 줄을 걸고 기타 등등의 작품을 걸쳐놓은 전시회였다. 허탈함을 감추려고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나의 지도교수님은 시인으로 활동하시면서도 많은 양의 전공 책을 쓰시는데, 집필 작업을 거들며 배울 일이 많았다. 서른이 되던 해 머리글에 ‘도움을 준 아무개’로 소개되었을 때 혼자서 기뻐 날뛰었다. 1년이 지나 한 챕터를 맡았고 지도교수님은 내 원고를 수없이 다듬어 주셨는데 내 이름이 공동저자로 올라간 순간 부끄러움과 동시에 눈물이 글썽거렸고 부모님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것은 연주회에 함께 출연하여 자리를 빛나게 하거나 그림에 붓질을 더해주어 그림을 예쁘게 하는 일, 자기 시집에 타인의 시를 소개하거나 본인 전시회 한 구석에 제자나 후배의 그림들을 소개하면서 장래가 총망한 사람이라고 알리는 일과 사뭇 다르지 않다.

다빈치의 정교함에 그의 스승이 붓을 놓고 다신 그림을 그리지 않겠노라고 한 일화가 있고 뛰어난 제자를 비방하는 스승도 학계마다 왕왕 있지만 우리에겐 ‘청출어람이 청어람이라’ 라는 말이 있다. 대부분의 스승은 제자가 더 뛰어나길 바라고 잘 되기를 바란다. 일반인들은 살아생전 사제지간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는 모를지라도 킁킁킁! 상업적인 냄새는 잘 맡는다. 돈을 내고 입장을 할지라도 알맹이 없는 전시회에서 돈 냄새를 맡고 싶진 않은 것이다.

훈훈한 마음을 나누는 연말이다. 기획사의 상술이 떨떠름하더라도 전시회나 음악회에서 죽어서라도 제자와 후배들을 생각하는 대가들의 따뜻한 마음을 작품 속에서 느껴보자. 모네나 렘브란트가 모르는 후배이지만 함께 전시되는 것이 기획사들의 상술이 아닌 후배를 키우려는 대가들의 사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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