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김기완·김기범 형제 항일투사
진주성-김기완·김기범 형제 항일투사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11.02 18:34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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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사 연구실장
 

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사 연구실장-김기완·김기범 형제 항일투사


김기완(金淇完)·김기범(金淇範)형제는 김해 김씨로 경남 하동군 청암면 출신이지만 주로 하동읍에 거주했기 때문에 하동읍 읍내리 출신으로 아는 이들이 많다.

하동군 청암면 묵계가는 길 청암 호숫가에 항일투사추모비가 1995년에 건립되었으나 김기범 선생은 들고 김기완 선생은 들지 못했다.

김기완(1883~1961)선생은 1907년 2월 대구에서 시작한 국채보상운동에 기부금을 내고 향리 주민들을 독려해 국채보상운동에 동참토록 하고 동학 접주로 활동한 부친 김종련도 보상운동에 참여토록 했다.

1920년 하동청년회가 창립되자 평의원으로 참여하고 농촌계몽운동. 애국강연을 계속했다. 동아일보 하동지역 고문이 되고 조선노동총동맹 중앙집행위원과 조선사회단체 중앙협의회 소속이 되어 일제와 투쟁하고 노동자의 대변자가 되어 전국으로 다니면서 활동했다. 또 조선노농동맹 간부로 활동중 전남지역을 순회하다 일경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전국적인 항일민족단체인 신간회에 가입해 1927년 10월 신간회 하동지회 간사. 1929년 8월 신간회 하동지회 집행위원장등으로서 <뭇소리>라는 기관지를 발간해 경남 .전남지역에 배포했다. 애국계몽 토론회와 금주금연운동을 전개하고 안희제 선생을 통해 군자금을 임시정부에 보내기도 했다. 아들 김인재가 순천에 있다.

김기완의 아우 김기범(1885~1961)선생은 1919년 4월 하동군 청암면 정신교 집에서 처음으로 태극기를 만들어 김종은 집 마당에 세우고 주민 30여명 에게 “내일 다시 모여 독립만세를 외치자” 라고 했다. 다음 날 면사무소 앞에서 면장을 만나 독립만세를 강요하고 시위하다 일경에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고 1919년 5월 16일 진주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이 언도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 공을 인정해 199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아들은 창식·창준·창교·창덕(부산지역 중·고등 5곳 건립 또는 교장)이 있다.

하동군 하동읍 읍내리 언덕에는 2014년 3월 1일 하동독립기념탑비 제막식을 거행했고 하동독립공원에 웅장하게 세워져 있는데 전 국회의원 이수종이 여러 해 동안 앞장서고 하동군수 조유행·하동문화원장 노동호·도의원 황종원·군의회 의장 이정훈 등이 공을 세웠다. 건립위 사무국장 오대식은 2대 째 봉사했다. 그러나 하동청년회관을 건립할 때 협조하고 공을 세운 10여 명이 빠진 것은 큰 오점으로 남게 되었다. 지금이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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