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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로 대중에게 감동과 희망주는 촛불 되고파밀양 도의원 출신 ‘늦깎이 가수’ 박태희
창원/최원태기자  |  cwt60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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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1.15  18: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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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양 출신의 ‘늦깎이 가수’ 박태희씨는 현재 경남스카우트연맹장을 맡고 있고 경남도의원과 경남도교육위원을 지낸 정치학 박사로 부민종합건설(주) 회장이기도 하다.
밀양 출신의 ‘늦깎이 가수’ 박태희(60)씨는 정치인이자 사업가라는 독특한 이력을 지닌 인물이다. 현재 경남스카우트연맹장을 맡고 있는 그는 경남도의원과 경남도교육위원을 지낸 정치학박사로 부민종합건설(주) 회장을 맡고 있다. 박씨는 60이 된 나이에 두장의 앨범을 내고 최근 ‘바래길’이라는 노래를 발표하고 트로트 가수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박태희씨의 당찬 가수 도전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주>

다음은 박태희씨와의 인터뷰이다.

-다양한 약력을 가지고 있다. 정치학 박사도 했고, 건설회사 CEO, 한국스카우트연맹 경남연맹장을 하고, 트로트 가수까지, 그리고 대통령표창까지 받았는데, 어떻게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게 됐는지
▲저는 무슨 분야든 맡은 바에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왔다. 특히 건재상으로부터 건설회사 회장이 되기까지 무척 힘이 들었다. 어릴 때 꿈이 가수였다. 초, 중학교 시절에 가수 나훈아가 저에게는 우상이었다.

특히 나훈아씨의 노래가 나오면 밤이나 낮이나 따라 부르곤 했다. 나훈아씨처럼 되어봤으면 하는 순수한 마음에서 나훈아씨가 다녔던 서울에 있는 예술고등학교에 가려고 밀양에서 서울까지 완행열차를 타고 입학원서까지 접수했다. 하지만 부모님의 완강한 반대로 인해서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부모님 당신들이 힘들고 어렵게 살았으니깐 자식들은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고 돈도 많이 버는 사람이 되라고 바라셨다.

저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서 대학진학을 하려고 준비를 했는데 갑자기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아버님이 경영하시던 조그마한 건재상을 제가 맡아서 가장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다. 가수라는 꿈도 무너졌고, 또한 대학도 갈 수 없는 형편이 되었으니깐 일이나 열심히 해서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오직 일에만 정진했다. 당시에 차도 없고 해서 자전거, 손수레로 건설현장을 누비면서 배달을 다녔다.

현장을 누비며 힘들 때는 나훈아의 ‘고향역’, ‘물레방아 도는데’를 마음껏 부르며 다녔다. 제가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어머님은 무척 마음을 아파하셨다. 그러나 열심히 노력하다보니 땀의 결실이 맺기 시작했다. 그동안 건설현장을 다녔던 경험에 건설회사를 차리게 되었다. 나름대로 건설 회사를 성공에 이루었고, 오늘날 회장을 맡게 되었다. 그리고 어머님이 그렇게 바라셨던 대학생 아들이 되기 위해서 30대 후반에 야간대학에 진학해 열심히 노력을 했다. 그래서 언론학 석사에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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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가수의 꿈 늦은 나이에 이뤄내
힘든 시기마다 노래 부르며 위안 얻어
앨범 수익금 작은 나눔으로 ‘큰 행복’ 
노래로 어려운 사람에 희망 전하고파 

7년째 보이스카우트 경남연맹장 맡아
청소년 올바른 성장 위한 다양한 활동   
정치학 박사·건설회사 대표로도 성공
어떤 분야든 맡은바 열심히 결실 맺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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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가수 데뷔하기에는 어린 나이는 아니지 않은가. 이렇게 늦깎이 가수로서 시작했는데 벌써 두 장의 앨범을 냈는데 가수가 되신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저는 어릴 때 가수가 꿈이었다. 바쁘게 살아오다가 어느 날 문득 나는 어릴 때 가수가 꿈이었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렵고 힘든 좌절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노래로 만들어 보는 것도 큰 의미가 있지 않겠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앨범을 내게 되었다.

   
▲ 1집 앨범 ‘꿈의 노래’
-하지만 음악에는 다양한 장르가 있는데 많은 장르 중에 트로트를 선택한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아까 말한것 처럼 나훈아씨의 노래를 무척 좋아했다. 그 당시에 제가 불렀던 사연들이, 그런 감정들이 아직도 남아있기 때문에 트로트를 선택하게 되었다.

첫 앨범 1집 주제곡 ‘꿈의 노래’다. 참 멋있는 제목인 것 같다. 요즘 또 사회가 각박하다 보니깐 이렇게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꿈을 이룬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될까 이런 생각도 들어 앨범을 발표했다.

‘꿈의 노래’는 제 인생의 노래다. 제가 지난날 살아오면서 좌절과 시련이 있었다. 제가 정치를 하면서 특히 단체장에 출마하게 되었다. 공천을 받기 위해서 죽을 고생을 다 했는데 공천을 탈락한 사람들이 저한테 음해와 악성루머에 의해서 제가 간소한 표 차이로 낙석을 했다. 그 아픈 마음을 노래로 만들어서 저처럼 아팠던 사람이나 마음이 아픈 사람들, 특히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서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자 이 노래를 만들게 되었다.

   
▲ 2집 앨범 ‘밀양 머슴아’
그리고 1집 앨범이 나온 이후에 1년 만에 지난 7월 2집 앨범이 나왔다. 주제곡 ‘밀양 머슴아’, ‘바래길’, ‘인연이란’, ‘남편’ 등 4곡의 신곡이 나왔다. 2집 앨범발표 수익금을 여성용품을 살 돈이 없어 상처받은 여학생의 사연을 접하고 안타까움을 느껴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자 신용수 의창구청장에게 200만원을 기탁했다.

요즘 ‘밀양 머슴아’는 상당히 방송도 많이 나오고, 노래교실에서도 많이 배우고 있다. 노래가 경쾌하고 누구나 고향을 가진 분들이 생각날 때 지명만 바꾸면 자기 지역의 노래가 되다 보니깐 사람들이 아주 많이 따라부른다고 한다.

-지난 9월 28일에 KBS 아침마당에 출연해 노래를 부르던 날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사연이 있다는데
▲그날 방송에서 어머니 소원을 이야기하는데 그 날 마침 애석하게도 저희 어머님이 돌아가셨다. 그래서 그 날 ‘바래길’ 노래를 부르고 보니깐 제 가슴이 너무 뭉클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너무 가슴이 뭉클해서 안타까운 그런 마음을 같이 동참한 거 같다. 그래서 1등을 차지했다. 또 모친상 조의금 중 일부를 저소득층 청소년들에게 여성용품을 지원 밀양시청을 방문, 저소득층 청소년들에게 여성용품을 지원해 달라며 1000만원의 성금을 기탁했다. 요즘 ‘바래길’ 노래도 어머니의 애환이다 보니깐 사람들이 무척 좋아하는 것 같다.

노래하다 보니깐 사실 남들에게 희망을 주고 즐거움을 주다 보면 큰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노래는 우리 마음에 여유를 가질 수 있게 하고, 생활의 활력소 역할을 할 수 있다. 특히 요즘 노래교실에서 취미생활을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분들을 보면 한결같이 마음이 밝고, 웃음꽃을 느끼는 것 같다.

-어떤 이유로 정치를 하게 됐는지
▲저는 밀양에서 태어나서 한 번도 떠나본 적이 없다. 밀양에 대한 애정이나 밀양에 대한 큰 발전을 항상 염원하고 꿈꾸고 있었다. 제가 시민의 대표자가 되어서 시민의 심부름꾼을 열심히 하면 지역의 발전이 있지 않겠나 이런 마음에서 제가 처음 정치를 출마하게 되었다.

   
 
   
 
   
▲ 가수 박태희씨는 현재 한국보이스카우트연맹 경남연맹장으로 청소년들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재 한국보이스카우트연맹 경남연맹장을 맡고 있는데 이 단체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는지
▲한국보이스카우트가 2002년도부터 한국스카우트로 변경이 되었다. 스카우트는 세계 최초의 청소년 단체다. 지금부터 110년 전에 1907년도 영국의 장군인 베이든 파월경이 만든 최초의 청소년 단체인데 한국에 들어온 지가 94년째가 되었다. 1922년에 들어왔고, 경남에 들어온 지는 올해로  70주년이 된다. 1946년도에 들어왔는데 700만명의 대원이 거쳐 갔다.

스카우트는 대자연속에서 심신을 단련하고, 청소년들의 잠재력과 인격형성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스카우트는 하는 학생들을 보면 교우관계라던가 자신감, 협동심, 리더십 청소년 단체 스카우트 하는 학생들을 보면 학교폭력이나 왕따를 하는 학생이 아무도 없다.

또한 학교에서나 가정에서 하지 않는 교육을 통해서 아이들이 자신감, 협동심, 리더십은 살아가면서 얼마나 필요하지 않을까 하고 이런 교육은 오직 스카우트 밖에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그래서 저는 스카우트와 인연을 맺은 지가 1998년도 도교육인이 되면서 맺어 올해 18년차가 되었다. 스카우트연맹장이 된지는 벌써 7년째가 되어가고 있다. 지금 청소년단체가 어렵고 힘이 들지만 이 단체를 맡아서 청소년들이 올바르게 명랑하게 크는 부분에 대해서 자부심을 느끼고 열심히 하고 있다.

-앞으로 어떤 활동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
▲외롭고 어려운 곳에 봉사를 하고 싶다. 그리고 제 꿈이 베스트 예술가를 만들어서 좋은 곳에, 어두운 곳에 다니면서 공연을 하며 희망을 주고 싶은게 제 꿈이다. 그래서 각 장르별로 대학교수, 인간문화재, 명인들을 구성해서 공연을 하고 싶다.

악기도 색소폰을 비롯해서 아코디언, 기타 다양한 장르가 있고, 성악이나 명창이나 가곡이라던가 대중가요라던가 이런 분야도 많고, 춤도 탭댄스라던가 여러 분야가 있지 않습니까. 한 자리에 모아서 다양한 공연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 제 꿈이다.

이 세상이 노래하는 세상이 되어서 이웃과 주변에 따뜻한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고, 돈이나 명예도 중요하겠지만 저는 가장 가치 있는 삶이란 나눔과 배려, 봉사로 사회에 이바지하는 게 좋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본다.

또한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서 희망의 전도사 역할을 저는 하고 싶다. 앞으로도 제 노래가 주변의 활력을 불어넣고, 지역의 좋은 발전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은데 저는 현재 노래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가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어떤 방법의 노력과 연습을 하고 있는지
▲제가 사실 노래를 모르고 막무가내로 저 자신이 노래를 잘하는 거로 생각했는데 막상 앞에서 해보니까 노래공부를 해서 잘하는 사람이 많더라. 저 스스로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고 요즘 훌륭한 선생님을 만나서 부족한 부분을 빨리 보완을 해서 정말 훌륭한 모습을 여러분께 보여드리고 싶다. 또 실력 있는 가수로 평가받고 싶고, 대중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주는 사람들을 위해 촛불처럼 좋은 세상을 밝히고 싶다.  창원/최원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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