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시절이 하 수상하니
진주성-시절이 하 수상하니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11.17 18:56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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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 가을은 사흘이 멀다 말고 반갑잖은 빗속을 헤매었다. 가을비가 왜 그리도 잦았는지 기상대의 명쾌한 해설도 없이 사흘걸이로 찔끔거려서 가을걷이를 하는 일손들이 갈피를 잡지 못 하고 혼란을 겪었다. 잘 지은 벼농사도 논바닥이 물이 괴였거나 질펀하게 진창이라서 콤바인이 빠져서도 그렇고 아니라도 벼이삭이 비에 젖어 제때에 벼 수확 못하고 애를 먹었다. 완숙기에 타작을 해야 쌀의 질이 좋아 밥맛도 좋다는데 황숙기마저 놓쳐서 벼이삭이 꼬시라져 윤기 흐르는 기름진 햅쌀을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니 땀 흘려서 일궈낸 풍년농사를 가을비가 들어서 애꿎게 만들었다.

이마가 따가울 정도로 가을 햇살이 따끈따끈하여 곡식을 알차게 여물게 하고 습도가 낮아 거둔 곡식을 말리고 했었는데 어찌된 판인지 올 가을은 땅바닥이 마를 날이 없이 가을비가 추적거려 가을걷이도 힘들었지만 단풍구경을 나서는 나들이객도 전만 못한 가을이었다.

사계절 중에서 가을만큼이나 맛이 있고 멋이 있는 계절도 없다. 봄은 향긋하나 푸석거리고 여름은 화끈해도 텁텁하고 겨울은 알큰하지만 딱딱하고 가을은 새콤하면서 사각사각하다. 바라만 봐도 눈시울을 지긋하게 하는 감칠맛이 나는 계절이다. 그러한 가을이 올해는 어쩌자고 사흘이 멀다 하고 궂은 날씨였다. 최순실이 온 세상을 들쑤시고 다녀서 하늘도 어지럼증에 걸려서 일까, 가을이 깊어가도 나뭇잎들이 단풍도 들기 전에 데친 듯이 거무충충하게 시들어갔다. 국정농단으로 시절이 하 수상하여 그러는 거였을까.

보노라 설악산아 다시 보자 지리산아/ 고국산천을 단풍 없이 보내랴 만은/ 시절이 하 수상하니 들동 말동 하여라. 청나라로 불려가던 김상헌의 시조를 흉내 내며 못내 아쉬워했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구름속의 볕살에도 오색찬란한 단풍이 뒤늦게 물들었다. 흩날려 떨어져버린 낙엽이 아니라도 남은 잎들이 열화같이 불붙어서 영롱한 빛깔로 곱디곱게 물들었다. 순리를 따라 제몫을 다하는 자연의 섭리가 새삼스럽게 경이롭다. 우리들의 세상사도 이 같으면 안 될까 하는 생각이 가슴을 짓누른다.

이제는 우리도 거듭나서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그러하고 문화도 예술도 모두가 제 빛깔을 마음껏 발휘하여 오색찬란한 역사로 아름답게 물들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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