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한말 유림(儒林)들의 항일운동
진주성-한말 유림(儒林)들의 항일운동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11.23 18:27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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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사 연구실장
 

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사 연구실장-한말 유림(儒林)들의 항일운동


권도용(權道溶)(1877~1963)은 1919년 4월 김형권·강대창·박재용·박재수 등과 함께 경남유림대회를 통한 항일운동을 전개하다 징역 1년형이 언도되어 옥고를 치렀다.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김한익(金漢益)(1890~1933)군수 김석규의 아들로 함양3.1운동을 지도하고 1년 6월형이 언도되어 옥고를 치른 공적으로 하재익(1883~1922)과 함께 1990년에 각각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권숙린(權肅麟)(1877~1939)아우 권숙봉과 함께 단성·단계 3.1운동을 지도하고 3년 6월형이 언도되어 옥고를 치른 공적으로 199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강명수(姜明秀)(1887~1925)는 김선명(金善明)유림과 함께 단성.단계 3.1운동을 지도하고 고문후유증으로 순국한 공적으로 2008년 8월 각각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이관(李瓘)(1860~1928)천도교 전도사로서 독립선언서와 격문을 기초한 공적으로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압록강 이남에서 최고 학자란 칭호를 받았다.

박규호(朴圭浩)(1850~1930)1907년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하고 파리장서청원서에 서명하고 1995년에 건국포장이 추서됐다.
박정선(朴正善)(1884~1957)은 파리장서청원서에 서명하고 중국에서 항일운동을 계속한 공적으로 2005년에 건국포장이 추서됐다. 고려 때 이방실 장군의 비문을 지었다.

하용제(河龍濟)(1854~1919)대흥군수·수군절도사를 역임하고 파리장서청원서에 서명하고 고문 여독으로 순국한 공적으로 건국훈장 애족장(1995년)이 추서됐다. 덕천서원 경의당 현판을 쓰고 문집이 있다.

조현규(趙顯珪)(1877~1950)면우 곽종석(郭鍾錫) 선생의 문인으로 파리장서청원서에 서명하고 옥에서 고생한 공적으로 건국포장(1995)이 추서됐다.

허신(許伸)(1873~1950)성재 허전(許傳)선생의 문인으로 단성·단계3.1운동을 지도한 공적으로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이호용(李好用)(1893~1951)단성면서기 재직중 신등·단성3.1운동을 지도하고 징역2년형이 언도되어 옥고를 치른 공적으로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김우림(金佑林)(김황)(1896~1978)마지막 유림이라고 하며 파리장서청원서에 서명하고 내몽고에 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한 공적으로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문집(文集)이 있다.

위 소개한 외에도 수많은 유림들이 항일운동을 전개했으나 명단수집이 어렵다. 위 6~7명의 공적을 필자가 찾아 훈·포장이 추서되기 까지 노력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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